[인터뷰 in&out-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우찬 교수] 연기금 주주권 행사, 정치는 빠져라

Է:2011-05-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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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n&out-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우찬 교수] 연기금 주주권 행사, 정치는 빠져라

정치적 해석이 본질을 가렸다.

지난달 26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정책토론회에서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을 견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자 논란이 확산됐다. 그의 말은 거칠었다. 대기업은 견제해야 할 거대 권력이고, 삼성은 애플의 아이폰 쇼크에 당황해하는 ‘한 수 아래’ 기업이 됐다.

토론회 이후 연기금 주주권 행사는 정책이 아닌 정치적 문제로 해석됐다. 타이밍도 부적절했다. 정책은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얻을 만한 시점에 제안되는 게 중요한데, 정권과 재계가 밀월을 끝내고 애증 관계로 변모한 상황에서 튀어나와 태생부터 오해를 샀다.

재계는 정권의 레임덕을 막으려는 인기몰이 아이템으로, 언론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기(氣)싸움 연장선에서 ‘주주권 행사’를 해석했다. ‘견지망월(見指忘月)’. 손가락에 가려 달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는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논의된 지 10년쯤 되는 ‘중고 신인’이다. 이를 오래도록 지지해온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우찬(44) 교수를 3일 서울 회기로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곽 위원장 발언이 쏟아졌던 정책토론회에서 ‘해외 연기금 주주권 행사 사례’를 발제했다. 정치적 논쟁으로 전락한 상황, 그도 답답해했다.

-곽 위원장 화법이 세련되지 못했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재벌 제재 수단이 아닌,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홍보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오해 소지가 생기게 이야기할 줄 몰랐다. 그게 곽 위원장 스타일인지는 모르지만. 토론회 전에 보도자료가 배포됐고, 인터넷 언론에 떴고, 전경련과 경총에서 이미 반박성명이 나왔다. 소통의 방향이 아니라 치고받는 모양새가 됐다. 미래기획위원회(미래위)가 어떻게 연기금 주주권 토론회를 기획했는지 뒷이야기는 모르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다. 2001년 참여연대를 주축으로 한 토론회에도 발제자로 참여했는데 10년이 훌쩍 지났다.”

-10년 전 참여연대가 내놓았던 제안을 지금 이 정권이 주장하는 상황도 아이러니다.

“사람들이 현 정권을 안 믿어주는 게 문제다. 진짜 공정사회를 추구하느냐, 정말 서민과 주주들을 위한 정책인가, 가짜 아니냐, 이렇게 되묻고 있다. 이번 사안도 진정성이 의심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미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의결 안건 중 국민연금이 반대한 비율은 8.1%로 일반 기관투자가(0.47%)보다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위가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니 다들 색안경 끼고 본다. 재계가 정부 동반성장 정책에 순응하지 않으면 국민연금이 안건마다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협박처럼 들린다.

“국민연금이 행사하는 거의 유일한 주주권은 의결권이다. 이건 가장 낮은 단계의 주주권이다. 주주제안, 입법운동, 투자자 연대 등 높은 단계의 주주권 행사는 국민연금이 행사하지 않는다. 지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거의 영향력이 없는 수준이다. 길을 건너다 대낮에 강도 만났는데도 경찰서 가서 신고 못하는 게 국민연금의 상황이다. 투자기업의 지배주주 일가가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자녀에게 부를 불법적으로 상속하는데 소송을 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손실이다. 그 손실을 막자는 얘기다. 착한 기업 만들겠다는 게 아니다. 국민 돈이 줄줄 새는 건 막을 수 있는 정당한 방법이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은 고려해 봤나.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위원회 20명 중 12명이 정부 인사로 구성된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관치금융’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펀드에 자금을 위탁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간접적인 방법도 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는 10개 운영사, 18개 펀드에 자금을 위탁한다. 직접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포커스 리스트’에 한정된다. 무리한 투자로 수익률이 심하게 곤두박질치고, 지배구조에 현격한 문제가 있으면 처음엔 대화를 시도하고, 그것도 안 되면 해당 기업을 ‘포커스 리스트’에 포함시켜 주주권을 행사하는 거다. 1년에 10여개 기업이 리스트에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우선 간접적인 방식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게 순서상 맞다. ‘포커스 리스트’ 발표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좀 더 성숙해졌을 때 하는 게 맞다.”

-형식적인 논리 아닌가. 펀드에 위탁한다고 해서 정부 입김이 사라지나. 절차를 세탁한다고 해서 관치금융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을 것 같다.

“일부분 맞는 이야기다. 기금운용 규정상 한 기업에서 10% 이상 지분을 가질 수 없다. 현재 5% 이상 지분을 가진 곳이 139개사다. 그렇지만 10% 미만으로 기업을 좌지우지할 순 없다. 삼성전자와 국민연금이 대결을 벌인다고 가정하자. 이건희 회장 지분(3.4%)을 비롯해 친인척, 임원, 계열사 등 이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분이 17.6%다. 국민연금 지분 5%로는 게임이 안 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고, 대다수 기관투자가들이 국민연금 편에 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확실한 명분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다른 기관투자가를 설득해 영향력을 행할 수 있는 거지. 미국 시가 총액의 0.3%에 불과한 캘퍼스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따라와 주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투자자를 설득시킬 만한 합리적인 명분이다.”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를 고려한 투자가 이뤄지다 보면 ‘수익률’이 저하된다는 우려가 크다. 수익률과 사회적 책임이 상충할 수도 있다.

“궁극적인 목적은 수익률이다. 어떤 경우에도 수익률에 반하는 투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기업구조,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수익률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회책임펀드(SRI)라고 해서 모두 수익률이 나쁘진 않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알리안츠자산운용의 사회책임펀드는 현재 수익률이 굉장히 좋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인데, 비재무적 위험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한 투자가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잘 되지 않고 있다. 특히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쪽이 가장 중요한데 이런 쪽으로는 투자가 잘 안 된다. 부담스럽고, 민감하기도 하고. 이런 상태에서 나온 말 중에 한국에서 먹히는 게 ‘사회적 책임투자’다. 속된 말로 좀 더 편하게 가는 방법이지. 사회적 책임투자라고 하면 개념이 어벙벙하다. 불확실한 개념이니까 반대세력도 없는 거다.”

-국민연금의 모호한 의결권 행사 지침도 문제다. 캘퍼스 의결권 행사 지침은 82쪽에 달하지만 국민연금은 19쪽에 불과하다.

“현재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지침이 완벽하진 않다. 어떤 측면에서 너무 경직돼 있고, 또 모호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그걸 보면 추상적인 이야기가 총론으로 있고, 자세한 해설서도 있기 때문에 서로 보완관계를 이룬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지침도 그렇게 가야 한다.”

-공무원연금인 캘퍼스는 미국 시가총액의 0.3%에 불과하지만 국민연금은 4.4%에 달하는 데다 거의 전 국민이 가입돼 있다.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국내와 해외 연기금을 단순 비교하는 건 억지 아닌가.

“해외 연기금은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이를 닦듯 주주총회 다가오면 의결권 행사 다 한다. 영국 미국 등에 국한된 게 아니라 대다수 유럽 국가가 그렇다.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사회 구조가 우리나라보다 느리게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국민연금도 우리보다 주주권 행사가 강하다. 최근 일본 금융청이 개혁한 부분은 임원 연봉을 개별적으로 공개한 거다. 일본은 임원 1인당 연봉이 1억엔(약 13억원) 이상이면 개별 공시한다. 미국처럼 가는 거다. 반면에 우리나라 기업은 임원의 보수 총액만 공개한다.

국민연금만 왜 유독 세계적 추세와 다르냐면, 그건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지배주주가 투자자보다 월등히 힘이 세기 때문이다. 요즘엔 다들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지배구조 개선, 이건 뭐 다 흘러간 얘기 아니냐, IMF 외환위기 때 잠깐 주목 받았던 과거 이슈 아니냐, 그런 말을 한다.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법안은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지금까지 점차 후퇴했다. 우리나라 지배구조 순위가 몇 위인지 아는가? 9위다. 지난해 11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아시아 11개국 중에서 9위다. 형편없다.”

지난 2월 애플 주주총회에서는 한 표만 얻어도 이사직을 유지케 했던 규정이 주주의 절반 이상 찬성해야 유지되는 ‘과반수 투표제’로 변경됐다. 캘퍼스가 주주권리 확대를 위해 주장한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로 인한 효과를 몇 가지로 정리해 달라.

“총수 일가의 탈법 행위를 견제해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고, 건강한 자본시장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 부패지수도 낮출 수 있다. 시장에 대한 신뢰가 올라가면 지금처럼 해외 헤지펀드(단기 이익을 노리는 민간 투자기금)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장기 투자자 즉 해외 연금, 보험이 국내에 들어온다. 그럼 지배구조가 개선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다. 연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면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건 보완해서 얼마든지 완화할 수 있다. 긍정적 효과가 정말 훨씬 크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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