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16) 22년째 폐품 주워 이웃 돕는 태안 문기석씨
“가난 고통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평생 나눔 실천해야죠”
“남들이 도와줘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즐겁고 보람도 있습니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태안상설시장 내 제일쌀상회 대표 문기석(48)씨는 22년 동안 고철 등 폐품을 모아 이웃사랑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도 어려운 이웃에 써 달라며 고철 등을 팔아 얻은 수익금 350만원을 태안읍에 기탁했다. 문씨가 그동안 고철 등을 팔아 기탁한 금액은 무려 7300여만원이다. 가진 사람들이 보면 작은 금액이지만 그에게는 피와 땀, 정성이 묻은 돈이다.
“고철과 폐지를 주우면 주변도 깨끗해지고, 자원도 재활용할 수 있으며,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는 ‘일거삼득’입니다. 이 일은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평생을 하겠습니다.”
문씨는 매일 오후 7시쯤 일을 마치고 자신의 1t 트럭을 몰고 나선다. 태안읍 내 골목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고철이나 박스 등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을 닥치는 대로 트럭에 싣는다. 트럭을 몰고 나서면 대략 1시30분가량 돌아다닌다. 이렇게 모은 고철 등을 자신의 집 뒤편 공터에 모아뒀다가 연말에 한꺼번에 팔아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마련한다.
문씨가 고철을 팔아 불우이웃 돕기에 나선 것은 1989년부터다. 태안이 고향인 문씨는 어릴 적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5남1녀의 둘째인 문씨는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이 같은 가난이 봉사활동을 하게 된 동기다.
문씨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형제 중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할 것 같아 내가 학업을 포기했다”며 “그 덕분에 동생들은 고등학교 이상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14세 때부터 11년간 방앗간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추석과 설 명절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한 달 품삯 2만∼3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심지어 주인이 주는 점심값 400원(자장면 값)으로 100원어치 호떡을 사먹고 저축했다. 이렇게 모은 돈 1300여만원으로 1989년 마침내 태안읍 내에 방앗간을 차렸다. 방앗간 종업원에서 주인이 되는 해였다. 방앗간 주인이 되면서 고철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다. 2003년까지 방앗간 일을 열심히 했다. 방앗간을 찾는 사람이 해마다 줄어들어 하는 수 없이 방앗간을 접고 쌀가게를 차렸다.
문씨는 “머슴살이로 번 돈은 10원 한 장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그는 남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가난의 아픔을 겪어봐서 불우이웃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며 “기회가 생기면 봉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89년 첫해에는 30여만원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 그 후 해마다 100만∼400만원을 기탁했다. 문씨는 가게 안에 ‘기금함’을 설치했다. 부인 한미숙(48)씨와 두 아들 정수(24)·찬수(23)씨를 이웃 돕기성금 모금에 동참시키기 위해서였다. 자식들에게 불우이웃을 돕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가게 수입이나 용돈의 일부를 기금함에 넣는 방식이다. 쌀가게 수입은 한 달에 200만원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해마다 50만∼100만원을 모았다. 기금 역시 고철 값과 함께 기탁한다.
문씨는 이처럼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는 앞장서고 있지만 본인의 일에는 둔감하다.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남들처럼 문화생활도 하지 못하며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남을 돕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태안에서 그는 ‘봉사왕, 고철 아저씨’로 통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부인은 물론 두 아들이 고물이나 주우러 다닌다며 창피하게 여기며 만류했다. 가족들의 만류로 한때 그만둘까 하는 갈등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작은 봉사가 어려운 이웃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요즘에는 아들이 직접 운전하고 문씨는 폐품을 수거할 정도로 온 가족이 보람을 느끼며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일을 하면서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고철과 폐지를 가득 실어놓은 1t 트럭에 실려 있던 폐품이 전부 타버리고 차량 수리비도 160여만원이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폐품 수집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이웃이 한 소행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밤새 폐품을 거둬들여 트럭에 실어놓았던 물건이 아침에 일어나면 누군가 다 훔쳐가 빈 트럭만 남을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주변에서 동참하거나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그 사람은 돈이 많아 남을 돕는다”는 비아냥대는 말을 들을 땐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언론이나 방송에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 사방에서 귀찮을 정도로 도와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에게는 요즘 고민거리가 한 가지 생겼다. 그동안 수거한 고철과 폐지를 자신의 땅(1200여㎡)에 모아 놓았으나 올해 초 그 땅을 팔아 주택을 구입하는 바람에 수거한 고철과 폐지를 보관해 놓을 마땅한 장소가 없어졌다. 아이들이 크면서 쌀가게 옆에 있던 13평 주택이 너무 비좁아 30평짜리로 이사 갔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지금까지 해온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데다 무조건 쌓아놓을 수도 없어 고민하다 태안군에 군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는 상태다. 주변을 더럽히기 때문에 쉽게 장소를 줄 수 있는 사정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지금은 쌀가게 바로 옆 창고에 폐품을 모았다가 한 달에 한 번씩 내다팔고 있다.
문씨는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공간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10년 전 봉사단체인 ‘초심회’를 만들었다. 집수리 봉사활동을 하거나 추석을 앞두고 무연고 묘를 벌초한다. 문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출발 당시 12명이던 회원은 17명으로 늘었다. 지난 4월 24일에도 태안읍 상옥리 김모(78) 할머니 집에서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쳤다. 김 할머니는 자식도 없이 홀로 사시는 분으로 거동마저 불편하다. 양철 지붕은 비가 샐 정도로 허물어져 있었다. 회원 12명이 참여해 지붕과 대문 등을 수리해줬다. 김 할머니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냐”며 “천사 같은 분들”이라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초심회는 2009년부터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쳐 매년 7∼8개의 집을 수리해주고 있다.
초심회는 또 추석명절을 앞두고 태안읍 인평리 무연고 분묘 주변 1만여㎡에서 벌초작업을 벌인다. 그는 “연고자가 없이 방치된 무연고 분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회원과 함께 자신들의 조상을 모시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벌초작업을 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겨울철에는 양로원 등을 방문해 유류나 연탄 등을 전달하고 있다.
문씨는 이 같은 헌신적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2007년에 ‘태안군민 대상’을 받았다. 태안군민 대상은 대상자가 없으면 건너뛰어 2∼3년에 한 명씩 대상 수상자가 나올 정도로 의미 있는 상이다.
2006년에는 보건복지부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충남도가 선정하는 ‘자랑스러운 충남인’이 됐다.
문씨는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폐지를 내놓지 않고 자체 수거하기 때문에 폐품 수집이 어렵다”며 “그러나 나의 작은 노력이 불우한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가 된다면 평생하고 싶다”고 말했다.
태안=글·사진 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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