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66) 남한산성의 영욕

Է:2011-05-0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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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66) 남한산성의 영욕

김훈의 소설에서도 묘사되듯이 경기도 광주 일대 남한산성(사적 57호)은 병자호란 치욕의 현장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곽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일장산성이라고 기록돼 있답니다.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은 후 인조가 1624년에 성을 쌓으면서 남한산성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지요.

안팎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한 남한산성은 그러나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굴욕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인조는 산성을 지키며 청나라에 대항했으나 세손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식량이 부족해지자 1637년 1월 30일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던 나루터)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지요.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산성에는 4개의 문(門)과 8개의 암문(暗門·비밀통로)을 두었고,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과 관아(官衙) 등 국가 유사시에 대비해 각종 시설을 갖추었답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동·서·남 문루와 장대·돈대·보 등 방어시설,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랍니다. 이곳에서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나와 온조왕의 성터로도 알려져 왔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구한 세월을 거친 남한산성은 정부가 추진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우선 대상으로 선정됐답니다. 문화재청은 2013년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WHC)에 제출한다는 계획입니다.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경우 치욕의 현장에서 영광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남한산성은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세계유산의 3가지 절대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그리고 완전성을 두루 갖춘 문화재랍니다. 290년간 산성을 읍성(邑城)으로 삼은 세계 역사상 유일한 산악 군사·행정도시이며, 고대 이래 중세까지 동양 성곽축성 발달사를 잘 보여주는 표본이자, 유교·불교·천주교·민간신앙이 어우러진 인류 정신사의 보고(寶庫)라는 것이죠.

얼마 전 들른 남한산성은 야유회나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닭도리탕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말끔하게 단장돼 있었습니다. 산성 내부에 있던 이른바 ‘러브호텔’도 철거됐으며, 건물 형태나 배치는 물론이고 안내 간판 등에서도 무질서를 연출한 식당가도 한쪽으로 몰아 한옥으로 보기좋게 개선했답니다. 경관을 해치는 전봇대도 지하에 묻을 예정이라는군요.

하지만 1990년대에 500억원을 들여 복원한 성벽 여장(성벽 위의 작은 담장)의 줄무늬 회가 떨어져 나가고 담장 지붕의 기와가 붕괴되는 등 부실공사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수어청의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수어장대(守禦將臺·경기유형문화재 1호·사진) 현판도 심하게 훼손돼 복원이 시급하답니다. 남한산성이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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