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 동떨어진 ‘평범한 삶’
괴리는 박탈감으로 이어져
비교의 사다리 내려놓아야
괴리는 박탈감으로 이어져
비교의 사다리 내려놓아야
인서울(서울 소재 대학) 졸업, 대기업 입사, 수도권 아파트 한 채, 때 되면 하게 되는 결혼과 출산, 노후 준비를 마친 뒤 은퇴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흔히 ‘평범한 삶’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조건들이다. 그러나 이 ‘조건표’는 이제 현실의 평균과는 동떨어진 채 SNS 속에서 ‘사악한 평균’으로 자리 잡았다. 인플루언서들의 일상은 5성급 호텔에서 즐기는 호캉스(호텔+바캉스), 오마카세(주방장 특선) 맛집, 해외여행 브이로그로 가득하다. 그들은 이런 소비를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일상’처럼 포장하며 구독자들에게 따라 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 ‘평균’은 실제 한국 사회 다수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평균 올려치기’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평균은 원래 다수가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지금의 평균은 상위 계층이 독점하다시피 한다. 이들이 만들어낸 높은 기준은 온라인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고, 현실과의 괴리는 곧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현재 한국에서 평균적인 삶이라 불리는 조건을 나열해 보자. 인서울 4년제 대학 진학, 대기업·공공기관 입사 또는 공무원 입직, 결혼 전 부부 각각 1억원 이상 저축, 양가의 도움을 받아 수도권 아파트 구입, 한두 명의 자녀 양육, 연 2~3회의 해외여행과 호캉스, 수입차 또는 국산 고급차 보유, 노후 준비를 마친 부모 세대까지. 이 모든 항목을 충족해야만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사회다.
그러나 통계는 이를 부정한다. 2024학년도 전체 대학생 가운데 서울권 대학 입학생은 약 12%에 불과하다. 2021년 기준 대기업 근로자 비율도 13.9%뿐이다.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월 609만원, 1인 가구는 239만원이다. 현실적으로 대기업 맞벌이에 수도권 아파트 자가, 자녀 2명, 연간 수차례 해외여행을 동시에 충족하는 삶은 극히 일부의 이상향이라는 얘기다. 핵가족화가 일상화된 지금 이 이상향은 더 기형적으로 부풀려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매일같이 비교에 시달린다. ‘나는 이미 뒤처졌다’는 생각은 일상이 되고, 노력 대신 체념이 자리 잡는다. 나보다 잘난 사람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까지 더 나은 출발선에 서 있다는 사실이 각인될 때 개인의 의욕은 꺾이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창의성도 서서히 잠식된다. 이상향적인 가족의 모습이 어느새 손에 잡히지 않는 ‘가족 이데올로기’로 굳어져 버렸다.
최근 전 대통령 부인의 명품수수 의혹은 이 괴리를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수천만원대 사치품이 입길에 오르내리지만 상류층에게는 5000만원대 목걸이, 1000만원짜리 팔찌도 아무렇지 않게 선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평균인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너무 높고 멀리 있어 보통 사람은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SNS는 이 간극을 더 벌린다. 소수의 잘난 사람이 ‘평범함’의 이미지를 독점하면서 나머지 다수는 자신을 ‘루저’로 규정하게 된다. 집과 차 등 유형의 자산뿐 아니라 가치관·의식 수준까지도 평균 올려치기가 만연하면서 조금만 달라도 ‘남들보다 못하다’는 낙인이 찍힌다.
이러한 구조에선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특히 20~40대 젊은 세대에게 이런 올려치기가 짙게 물들어 있다. 상위 20%가 평균을 독점한 채 나머지를 패배자로 내모는 분위기 속에서 건강한 경쟁도, 미래를 향한 희망도 사라진다. 정부가 중위소득을 끌어올리고 최저임금도 어느새 1만원이 넘어섰지만 체감하는 부의 격차는 더 공고해졌다. 단지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평균은 다수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지금처럼 평균을 상류층이 도둑질한 사회에서는 모두가 지는 게임만 이어질 뿐이다. 이제라도 비교의 사다리를 내려놓고, 현실에 맞는 평균을 재정의해야 할 때다. 지금의 ‘사악한 평균’ 아래에서 장삼이사들은 오늘도 허탈한 하루를 견딘다. 평균을 도둑맞은 채로.
김민영 산업2부 기자 m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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