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Է:2011-04-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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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평화의 왕

오늘날 세계는 평화롭지 못하다. 정치적으로 부정과 불의,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고, 크고 작은 전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경제적 분배의 불평등 결과로 사회적 약자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 허덕이고 소외되어 있다. 종교 간 갈등은 누그러지지 않고, 연이은 원전 사고와 자연 파괴로 인한 생태계 위기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가정과 사회, 교회와 종교, 국가와 세계, 전 지구촌의 평화가 절실히 요청된다. 기독인이 시급히 가져야 할 윤리적 과제는 평화실현 노력이다.

구약 개념의 샬롬(shalom), 곧 평화는 공동체 속에서의 총체적 정의, 조화, 안전, 구원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평화의 창시자요 근원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화를 주시며(레 26:6, 시 29:11), 그들에게 정의를 실천하게 함으로써 평화를 결실하게 하신다(사 32:17). 구약의 평화는 현실에서 실제적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의미로서 현재적이다.

동시에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성취될 의미로서 미래적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 심리적 위안으로서 평강과 평안의 협의적 의미만이 아닌 사회적 조화와 통합, 분열 해소라는 적극적 의미를 가진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이스라엘 사회는 사회적 부정의로 말미암아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목전에서 서슴없이 갖은 악행을 저질렀고, 부정의했으며, 사회적 약자를 홀대했다(사 1:16∼17). 재판정에선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재산을 탈취당한 자들이 즐비했으며, 무죄한 자의 피 흘리는 것을 그대로 방치했으며(렘 22:3), 불의와 부정의로 집을 마련하고, 탐욕으로 노동자의 품삯을 강탈했다(렘 22:13). 힘없는 자를 짓밟고, 부당한 세를 거뒀고, 의인을 학대했으며,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암 5:11∼12).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역시 평화(eirene)이다. 예수 자신이 평화이고, 평화의 왕이기도 했다(히 7:2). 예수 탄생 시 천사들은 그의 나심 자체가 평화임을 선포했다(눅 2:14). 예수는 평화를 가르치고 평화를 위해 공생애를 마쳤다. 산상수훈의 팔복을 말씀하실 때, 평화를 만드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이 있다고 했다. 이어서 정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가 복되다 했다(마 5:9∼10). 평화를 위한 정의로운 삶이 참된 복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처형당하기 직전, 불의한 도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이방 적국에 포위당해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며 이렇게 탄식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 19:42).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고,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은 무죄한 자의 피를 찾아 헤매었다. 예수는 약자를 억압하고 학대하던 권력자들을 가차 없이 꾸짖었고, 가난하여 굶주리고 소외되어 우는 자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 마지막엔 불의한 인간의 죄악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과 평화를 유지하는 제물이 되었다(롬 5:1).

예수는 우리에게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정의로운 평화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신다. 기독인은 예수의 제자로서 평화의 복음을 증언하며 평화를 올곧게 실천해야 한다. 평화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 역시 교회가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강병오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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