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Է:2011-04-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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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아가페 실천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는 가능성’에 도전해야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기독인이 이웃을 사랑한다고 할 때, 절대적 의미인 아가페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기독인이 현실적으로 개인, 가족, 교회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아가페를 완전하게 실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도 여러 교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송사와 강단 다툼을 보라. 사랑을 말하기도 부끄럽다. 그렇다면 사회적 현실이라는 더 큰 명제 앞에서는 어떠한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1935년 ‘기독교윤리학의 해석’에서 아가페의 사회적 실현 문제를 고민하면서 아가페를 “불가능한 윤리적 이상”이라고 규명했다. 이때 불가능이란 말은 아가페의 실현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 상대적 실현이란 뜻이다. 사랑을 행함에 있어 인간적 노력의 불완전성이다. 그래서 니버는 아가페란 근사치로 접근해 가는 것으로 ‘윤리적 이상의 근사적 실현’의 의미인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라 칭했다.

니버는 기독인이 현실적이며 도덕적으로 사랑의 법을 실천하는 데 두 가지 기능이 있음을 주장한다. 하나는 심판적 기능이다. 기독인이 행한 모든 사랑의 성취는 아가페에 온전히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유죄 판결을 내린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의 근거와 완성 기능이다. 아가페는 현실의 모든 상대적 도덕의 최종적 성취 근거이고,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도덕을 완전으로 이끌어 올리는 강력한 추동역할을 하는 것이다.

니버는 이 두 가지 아가페 기능을 고려하면서 역사적 현실인 정치와 경제에서 아가페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밝혔다. 인간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삶이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여 경쟁하는 장이다. 니버는 강제적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아가페를 실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상대적 실현인 가능성으로 가는 대안을 모색하려 했다. 그것은 개인의 결단이나 선의지로 나타나는 힘뿐만이 아니라, 사회제도적 장치를 움직이도록 해서 사랑의 사회적 실현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사랑의 사회적 실현을 포기하는 패배주의적 비관주의적인 기독인이 있다. “인간은 죄인이며 세상은 죄로 가득 찼기 때문에 아가페를 현실사회에서 실천할 수 없다. 아가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는 결국 사랑을 통한 역사적 책임성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하나님 나라를 직접 현실에서 이루어보겠다는 환상적 낙관주의적 기독인도 있다.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여 “사랑의 법을 현실사회에서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 생각을 갖는 것이다. 양자 모두 현대사회에서 아가페를 실현하는 데 많은 약점과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불가능해 보이는 가능성에 도전해야 한다. 예수님이 몸소 보여준 사례를 통해 아가페를 실현해 나갈 역사적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한국을 사랑의 나라(lovedom)로 만들어야 할 과제, 즉 이웃에 대한 사회윤리적 사랑의 실천이 기독교에 주어졌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강병오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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