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자의 설움, 대신 비명 질러줘야 하지 않겠소… 공선옥 장편소설 ‘꽃같은 시절’

Է:2011-04-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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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자의 설움, 대신 비명 질러줘야 하지 않겠소… 공선옥 장편소설 ‘꽃같은 시절’
지난해,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했던 장편 ‘꽃 같은 시절’(창비)을 낸 소설가 공선옥(48)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저 흐벅진 전라도 사투리가 날아든다. “으매, 그 복잡한 서울 사느라고 애쓰요잉. 여기나 거기나 살기 팍팍한 건 매 한 가지이지라잉. 몸 둘 데도 맘 둘 데도 없는 세상 아니겠소? 저도 세상을 어찌 살아야할지 자꾸 헷갈리는구먼요. 그래도 봄이라고 속절없이 꽃은 피었응께 어쩌겄소.”

소설은 돌가루를 뒤집어쓴 채 꽃을 피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근자들어 도통 공선옥을 볼 수 없다했더니 광주광역시 지산동에 둥지를 틀고 그 꽃을 피운 사람들과 함께 3년을 살았던 모양이다. 소설 속에 작가로 등장하는 해정이란 인물을 공선옥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해정은 출판사와 장편을 계약한 뒤 글 쓸 장소를 물색하던 중 대학 동창의 소개로 전남 순양군 진평리의 빈 집에 살기 시작한다. 물론 순양군 진평리는 가공의 장소다. 거기서 만난 영희라는 인물도 도시철거민 출신으로 역시 진평리의 허름한 집에 찾아든 여인네다. 그런데 영희가 남편 철수와 함께 진평리로 내려온 동기가 순전히 꽃 때문이다.

“살 집을 찾아헤매던 그 봄날의 저녁참에, 마을 앞을 지나가는데 언덕 위에 선 집에서 번져나오는 복사꽃의 분홍빛이 먼 데서도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당신들도 살 집이 없어 외롭지요?”(16쪽)

집주인 무수골댁이 세상을 뜬 뒤 비어 있던 집에 서울에서 살고 있는 그 아들의 허락을 맡아 내려온 영희는 낯선 이에게 선뜻 집을 내준 집주인의 선의가 꿈만 같다. “꽃이라고요? 우리집에 꽃이 있었던가앙? 하여간, 언제까지 살으실지는 몰라도 꽃이 이뿌다며는, 살으야지요 뭐.”(19쪽)

영희는 인근에 들어선 불법 쇄석공장에서 날아오는 돌가루와 소음 때문에 고통을 받는 주민들의 추천으로 대책위원장을 맡게 된다. “깻잎에 돌가루가 박혀 입에서 싸그락싸그락 돌이 씹혔다. 논바닥에도 돌먼지가 쌓여 햇빛을 차단한 탓에 벼뿌리가 썩어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위대는 오합지졸의 꼴을 면치 못했다.”(57쪽)

시위대라고 해봐야 70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쇄석공장이 이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하자 경찰서에 출두하게 된 할머니들은 이름 석자도 쓸 줄 모르는 순둥이들이다. 영희는 할머니들의 지극히 소박한 바람이 무시당하는 세상에 분노를 느낀다.

공선옥의 문체는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무분별한 개발논리를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의 목소리에 밀려 더 힘없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을 만큼 섬세하다. “내 속의 패배주의하고 싸우는 거야. 긍게, 내 속의 패배주의와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냐 하며는, 이기든 지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억압하는 것과 싸운다는 것이여.”(146쪽)

소설을 읽다보면 지금은 거의 잊혀진 담양이나 곡성 쪽 사투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놀라게 된다. 전화로 듣는 공선옥의 목소리 또한 슬프고도 예뻤다. “요즘 농촌이 있는 줄 아쇼잉? 한번 내려와 보랑께요. 농촌도 다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으로 변해버렸지라우.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간단하게 무시해버리는 현실, 그것이 대한민국 없는 자들의 설움이고 현실이지랑께요. 말해봤자 입만 아프겄지만 소설 속 할머니들처럼 세상살이가 아프다고 누가 대신 비명이라도 질러줘야 하지 않것쏘잉.”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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