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논설위원의 동일본지진 직후 도쿄르포(1)
[미션라이프]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이 동일본 지진 직후 도쿄를 다녀왔다. 지진으로 엄청난 충격에 싸인 도쿄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절망과 공포, 그 속에서 싹트는 희망을 들어 보았다. 조 위원은 일본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일본 전문가이며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편집자 주>
3월 16일 아침 9시 김포에서 일본 하네다(羽田)로 가는 대한항공 2707편. 탑승객 348명을 태우는 744P형(型) 점보기에는 승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두루 둘러봐도 80∼90명이 될까. 동일본 대지진 탓이다. 그날 이후 서울행 노선은 늘 만석이지만 하네다행은 정원의 3분의 1도 안 찬다고 한 승무원이 말한다.
□일본인 관광객의 우울한 귀국에 동행하다
승객들 대부분은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13일부터 3박4일 동안의 한국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하네다행 비행기에서 흔히 보이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왁자한 분위기는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무용담이며 쇼핑한 물건 자랑이 넘치기 마련이지만 그런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두어줄 뒤에 앉은 젊은 여성 3인 그룹 중 한 사람은 아예 시종 눈물바람이다. “지진 때문이냐?”고 했더니 옆 친구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어 그 옆자리의 3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대뜸 난처한 표정이다. 인터뷰를 피하겠다는 것인지, 지진으로 온통 난리가 났는데 자신들만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게 어색하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맨 뒷자리에 앉은 노부부의 얘기를 들으면서 알 것 같았다. 회사원 세키네 다카오(關根隆夫·63)씨와 부인 후미에씨는 몇 년 전부터 연 1회 한국여행을 즐겨왔는데 이번에도 두 달 전 여행상품에 가입을 하고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그 와중에 대지진이 일어나 처음엔 여행을 취소할까 망설였지만, 당시 정부 발표로는 사망·실종자가 미미하다고 해서 예정대로 강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한 그날 저녁부터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세끼 식사를 제외하곤 하루 종일 NHK 위성방송을 붙들고 지냈단다. 미안함과 불안감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여행 자체는 참 좋았는데…”하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눈물은 눈물을 부른다. 가슴이 먹먹해 왔다.
지금까지 수 없이 일본을 드나들었지만 이번 만큼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웠던 때는 없었던 듯싶다. 1984년 유학 시절부터 따져 근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동안 나의 일본행은 두고온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편안하고 때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을 떠올리는 기분 좋은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아니었다.
11일 오후 2시46분 일본을 강타한 지진, 그리고 이어지는 여진이 내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쓰나미가 흙빛을 띠고 야금야금 집과 땅을 먹어들어오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내 몸뚱아리가 빨려들어가는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청춘을 바쳐 그곳에서 배우고 익혔던 모든 것들이 부서져내리는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쿄는 조용한 긴장감이 맴돌고
하네다는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런데 분위기는 이전과 많이 달랐다. 지난해 10월 하네다 공항 국제선 청사가 신축·개장한 이래 도쿄의 명물로 부상하면서 비행기를 타는 사람보다 내국인 관광객이 더 많았는데 청사는 썰렁했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대지진 이후 출입국자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내국인 관광객이 현저히 줄었다고 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도쿄 도심인 신주쿠(新宿)까지는 리무진버스가 편리하지만 시내 분위기를 보기 위해 일부러 게이큐센(京急線)을 이용해 지하철로 갈아타고 가기로 했다. 전철 안도 역시 한가했다. 마침 마스크를 쓴 노인 한 분이 옆에 앉았기에 말을 걸었다.
15일부터 도쿄에서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태로 인한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상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관측됐기에 마스크를 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가훈쇼(花粉症·꽃가루 알레르기)지 뭐, 방사능은 아직 걱정 정도는 아닌데”하고 말한다. 하긴 꽃가루 알레르기는 일본 인구의 10%가 앓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도쿄 사람들은 아직까지 방사성 물질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 듯했다.
한 시간 남짓 전철을 타고 오면서 인상적인 것은 사람이 많지 않을뿐 아니라 특히 어린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일본은 봄방학 중인데도. 마치 설·추석 명절 때 귀성행렬 때문에 서울 도심이 텅 빈 상태를 보는 듯했다. 도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지진으로 인근 지바(千葉)현에 있는 코스모석유㈜ 정유소가 불에 타면서 시내 대부분의 주유소가 재고 부족으로 문을 닫는 상황이라니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텅 빈 전철과 도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되레 긴장감이 넘쳤다.
조용한 긴장감은 슈퍼마켓에서도 확인된다. 신주쿠 가와타초(河田町)에 있는 도쿄한국학교 부근의 식료품 체인점 ‘산토쿠’에는 예상보다 상품들이 넘쳤다. 하지만 우유 코너에는 ‘1인당 2개로 제한합니다’라는 푯말을 비롯해, ‘컵라면은 1인당 3개만’ 등의 안내문도 보였다(사진). 다른 곳은 1인 1개로 제한하는 곳도 있다고 점원은 말한다. 가격은 지진 이전과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공급체계를 우려하는 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와중에 사재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날씨마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안 보인다. 자율 절전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면서 가게마다 최소한의 전등을 켜놓았기 때문에 상점가도 밝지 않았고, 단축 영업하는 곳도 많아 이게 불야성 도쿄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와 유학시절 다니던 일본교회(햐쿠닌초교회, 百人町교회) 식구들을 비롯해 이곳의 여러 일본인 지인들에게 한사람씩 전화를 걸었다.
지난해 11월 햐쿠닌초교회가 40주년을 맞아 열렸던 기념행사에 참석하러 온 이후 4개월만의 전화 소통이었지만 이번엔 더욱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 주로 도쿄 주변에 거주하는 분들이라서 이번 지진으로 가재도구나 책장이 무너져 내려 피해를 본 것을 제외하면 다른 피해는 없다고 안심하라며 되레 나를 위로한다. 외국인들이 벌써부터 도쿄를 떠나기 시작했다는데 나는 거꾸로 도쿄로 들어왔으니 걱정이 된단다. 따뜻한 배려심엔 그저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지진에도 쓰나미에도 그 어떤 사태에도 묵묵히 견디며 이웃을 먼저 살피는 사람들에게 이번 재해는 너무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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