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철기 (14·끝) 유럽·아프리카 선교위해 여생 보낼 것
1997년 유엔 제네바 대표부 차석대사로 나갔다. 유엔기구와 ILO, WTO 등이 주요 일터였다. 유엔인권위원회와 WTO의 지역협정위원회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이나 EU가 체결한 각급 FTA의 WTO 협정 부합 여부를 검토했다. 미국과 EU 간 첨예한 대립을 조정, 완화하는 역할도 맡았다.
사랑의교회에서는 나와 아내를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했다. 제네바 한인사회는 작았다. 세 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결국 하나가 됐다. 새 교회는 임영수(현 모새골 대표) 목사가 수개월간 이끈 후 이재철(현 100주년기념교회)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99년부터는 모로코 대사로 발령 받았다. 오랜만의 아랍국가 근무였다. 모로코는 사막이 아름다운 나라다. 이슬람 신정국가로 왕의 종교지도자적 위치가 중요했다. 주민들은 심성이 착해 대부분 우리를 좋아했다. 나와 가족은 모로코의 자연과 문화, 사람을 사랑했다. 부임했을 때는 IMF 사태로 대우의 현지 산업단지 조성 등 계획이 무산돼 모로코 국민의 상실감이 컸다. 이 때문에 야당 일부 인사는 노골적으로 정부와 한국을 비난했다. 나는 이 상처를 씻어내기 위해 교류 협력에 힘썼다. 모로코를 한국의 다목적 아프리카 진출 거점으로 하자고 건의했으며,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이 파견되도록 했다. 이후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점차 실적을 쌓기 시작했다.
모로코 정부는 교회를 한 곳만 허용했다. 한국과 미국교회는 주일날 각각 예배를 드렸다. 가끔씩 종교경찰의 감시를 받기도 했는데 3년 재임 중 일부 사역자들이 추방당할 위험도 있었다. 모로코는 5세기까지 기독교 지역이었다. 특히 베르베르족은 기독교 신앙을 소유했다. 귀국 후 지금까지 이 지역과 베르베르족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2003년 시작한 프랑스 대사직은 나의 마지막 포스트였다. 76년 유학 후 처음으로 프랑스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2006년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의 해는 일년 내내 행사를 치렀다. 한국 주관 130개 행사, 프랑스 주관 80개 행사가 교류됐다.
일제 때 독립운동 거점의 흔적을 찾아 그해 3월 1일 기념 현판 부착행사를 가졌다. 한국상공회의소를 만들고 기업인들과 주요 도시를 함께 찾았다. 외규장각 반환 문제의 실질적 해결 방안도 건의했었는데 최근 이 문제가 해결돼 기쁘다.
프랑스 한인교회들은 잘 연합된 가운데 한인사회와 유학생을 섬기고 프랑스 사회와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선교도 열심히 하고 있다. 교회들은 유럽의 쇠퇴한 기독교 실상을 안타까워하며 다시 불이 붙도록 기도하고 있다. 유럽은 이제 재복음화가 필요한 대륙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교회들이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유럽교회는 뜻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헌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세 가지 비전을 향해 남은 생을 살고 싶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위한 선교, 한·중·일 동북아 신앙공동체의 실현, 북한교회 재건 비전이다.
수많은 한국 외교관들이 세계 도처 어려운 지역에서 분투하고 있다. 국민소득 250달러 시대에서 시작해 2만달러 시대까지 외교 역사의 현장에서 일한 것을 감사드린다. 돌이켜보면 매일 매순간 주님께서 인도해 주셨다.
기도의 동역자인 아내에게 감사하고 자상하지 못한 아버지를 이해하며 잘 커준 두 아들에게도 감사한다. 이들이 더 큰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를 기도한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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