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길에서 길을 묻는다
산악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 이번 겨울 산행은 북한산 둘레길로 가니 같이 가지 않겠느냐며 연락이 왔다. 폭설이 내린 산이 아니고 눈 쌓인 둘레길이라 생각하니 제법 운치 있을 것 같아 따라나섰다.
북한산 둘레길은 열두 코스가 있는데 그날 정한 코스는 우이령길에서 정릉길까지의 구간이었다. 솔밭공원코스를 한 시간 걷고 나니, 순례코스라 하여 4·19묘역과 애국지사들의 묘역 구간을 돌아들었다. 다시 펜스가 있는 산으로 오르니 흰구름 구간으로 들어섰다. 이건 길이 아니고 북한산의 약 2부 능선을 제법 멀리 돌아드는 코스였다. 북한산을 한가운데 두고 짝사랑하듯 멀리서 바라보며 북한산 둘레 능선을 걷는 길이었다. 땀이 날 만하면 식고, 식을 만하면 땀이 도는 듯했다. 길을 잃어버린 듯하면 소나무나 참나무에 붙어 있는 둘레길 로고가 보였다. 로고는 나무를 닮은 사람 둘이 손을 잡고 안온한 얼굴로 걷는 모습이었다. 혹여 로고가 보이지 않아 두릿두릿 살피면 아스팔트 길바닥에 그려진 초록선과 화살표로 된 이정표가 우리를 안내하였다.
숲길에 들어서니 보이는 건 잎새 다 떨어진 나목과 하늘뿐이다. 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여백만큼 들어오는 넓은 하늘. 가끔씩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쌓였던 눈가루가 흩뿌려졌다. 그때마다 차갑게 정신이 드는 듯했다. 골짜기에서는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봄의 숨결이 숨어있는 듯했다. 여기서는 세속의 걱정 근심이 마치 광대한 우주 속의 먼지처럼 느껴졌다.
지난여름 태풍에 쓰러진 나무둥치가 가는 길을 방해해 낙엽길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 앞에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봄이 되면 분홍빛 진달래가 피어나 소쩍새를 불러들일 숲인가? 진달래 패찰이 붙어 있는 곳을 지나며 환하게 피어날 봄 산을 떠올려 보았다. 가끔씩 멧돼지가 출몰한다며 물리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눈을 마주치고 똑바로 쳐다보거나 그래도 달려들면 큰 나무나 바위 뒤로 숨든지 방울소리를 내라고 적혀 있었다.
빨래골이라는 곳으로 들어섰다. 조선시대 궁녀들이 빨래를 했다는 곳이다. 그녀들은 궁 안의 얼룩을 흔들어 빨아내며 내일을 기다렸을 것이다. 안네프랑크도 힘들어 쉬고 싶을 때면 자연과 하늘과 신이 있는 곳, 바로 숲으로 왔다는데 궁녀들도 나무들 비쳐내는 물가에서 자신을 한 차례 헹궈 내고 일어섰을 것이다.
산 그림자가 거뭇거뭇 내리자 숲속 가로등이 노랗게 불을 켜들었다. 마을 어귀로 나가는 길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모두들 걸음이 빨라졌다. 자동차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무엇을 얻었던가. 휴대폰과 리모컨을 손에 쥐며 얼마나 편리함에 길들여졌던가. 대신 우리는 당뇨와 고혈압과 비만을 얻은 건 아닐까 싶었다. 숲길을 걸으며 패랭이 꽃잎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풀벌레 울음, 그리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와 함께 사는 생명의 떨림들. 오롯한 자연의 울림 속에서 나를 찾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다시 길에서 길을 묻는다.
조미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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