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성경 번역 완간 100주년 기념 좌담회 '성경과 삶'
참석자=김순권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이덕주 감신대 교수, 임성빈 장신대 교수
장소=서울 대한성서공회 세미나실
△ 김순권 이사장= 한글성경이 한국 문화와 어떻게 공존하며 발전했는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길 바랍니다. 먼저 성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한국은 개신교 최초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도착하기 이전에 성경이 번역된 나라였습니다. 1882년 존 로스 목사가 중국 심양에서 조선인을 만나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을 번역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또 1883년 일본에서는 이수정씨를 중심으로 마가복음이 번역됐습니다. 이후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올 때 이수정씨가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후 1906년 신약성경, 1911년 구약성경이 번역완간 됐습니다.
△ 이덕주 감신대교수= ‘한글 성경’의 역사를 보자면 1911년, 비약적인 신앙 발전에 획을 그은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구약성서가 완역 출간 된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종로 2가에 성서회관이 건축된 것입니다. 이전까지 왜국의 재원으로 성경을 출간했던 과거를 돌아본다면, 성서회관의 건축이 완역본의 출간과 반포의 기반이 되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서회관을 통해 교파를 초월한 하나의 성서 사업이 이루어졌음은 물론, 한국 기독교가 하나의 성서를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임성빈 장신대교수= 1910년이 나라의 주권을 잃은 ‘절망의 해’였다면 1911년은 질곡 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 해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 완역본이 탄생했다는 것은 하나님 계시를 전보다 더 많이 소화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에게는 ‘성육화’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기독교와 한국문화가 만나는 과정에서 맺힌 첫 열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 1911년은 개화기였지만 우리나라는 개방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 나라의 국운이 기울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기독교가 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다고 보십니까?
△이= 소설가 이광수는 ‘조선과 기독교’란 책에서 “만약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한글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글은 1466년에 세종대왕이 창제를 했지만 400년이 넘도록 유교 지식인들의 문화에 억눌려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성서 66권이 한권으로 번역완간된 것은 한글 역사에서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한글 창제 이후, 한글로 방대한 문장이 집대성된 책은 성경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기독교가 한글을 깨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한글을 깨워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1943년 이후, 교회 목회자들과 신학교수들은 모두 일본어로 지식과 진리를 설파해야 했으며, 각종 기독교 문서들은 일본어로 출판됐습니다. 성서 한권만이 유일하게 한글을 고수해 출판을 유지해온 것입니다.
△김= 네 그렇습니다. 일제의 문화 탄압 속에서 성서는 꾸준히 배포되어 한글창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서가 완역된 후, 권서들은 문맹자들에겐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전했습니다. 또한, 유교사상에 의해 집안에만 있는 여성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지요. 당시 한국 선교는 성서와 더불어 시작되며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짚어주길 바랍니다.
△이= 원래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웁니다. 아마 그때의 선교사은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양반들만이 한문 중심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 외의 평민들은 언문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1893년 선교사 공의회에서는 한국 선교활동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로 한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성서의 내용과 더불어, 그 내용을 담은 한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평등과 자유 등의 개념을 깨닫게 하면서 자아의식을 성장하게 만들어 갔습니다. 양반과 상민, 남성과 여성이라는 수직구조 속에서 성서를 배우다보니,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봉건체제의 저항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서에서 배운 평등사회 실현, 즉 억압에서 자유를 구현하는 진리는 성도들에게 동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스럽게 저항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런 성경이 우리의 언어로 번역이 되자 그 누구에게라도 진리를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어떤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까요?
△임= 1907년 평양대각성운동이 일어나면서 교인들의 삶에서 구체적인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회개를 한 후, 도박을 끊고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말씀이 사회적인 운동으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알게 해줍니다. 결국 말씀이 인습으로부터 자유케 하고, 소수 지도자의 왜곡으로부터도 자유케 하며, 책임 있는 삶을 위한 단초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1907년에 발생한 평양 대부흥 운동은 사경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사경회의 마지막 순서는 수료증 전달 대신 청중과 인도자가 함께 성경을 암송하는 것인데, 1910년 교회 주보 광고를 보면 ‘이번 사경회엔 요한복음 13장을 외워올 것’이라고 써있습니다. 데닝 선교사는 60~70대 노인들이 성경을 줄줄 외우고, 맹인 백사겸이 사복음서 전체를 외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암송하는 문화는 처음 성경을 접근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외우다가 깨우침을 얻으면 실천을 하는 방법이지요.
△김=성경이 삶 속에 융화되지 않는다면 삶의 변화는 어려운 것인데, 기독교 문화는 신앙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요?
△이= 게일 선교사 보고에 “1907년 한 농부가 200리길을 걸어서 찾아왔다. 그는 마태복음 5장을 외웠습니다. 그에게 ‘형제여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 중요합니다.’라고 말하자, 농부가 손뼉을 치며 ‘어떻게 아셨습니다. 전 외우는 재능이 없어서 성구 한절을 읽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방법으로 성경을 다 외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교인이 있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부흥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교인들이 말씀을 삶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길 때에 비로소 힘이 생기는 것이라 봅니다.
△임= 지도자에게 건전한 신학이 담보되어야 성경을 성경되게 할 수 있습니다. 신학이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지 않는다면, 소비 중심의 세속적인 세상 문화에 동화되기 쉽습니다. 이제부터 신학, 목회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건전한 신학이 성경이 성경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김= 성경과 함께 성장한 신앙은 온전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세속적인 목표를 위해 말씀을 끌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윤리적인 설교보다 축복의 설교를 선호하는 교인들, 이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한 목회자들이 교인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교회는 말씀과 멀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목적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쓰여 진 목적에 의해 내가 움직이는 것이지요. 존스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교인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옮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강화도의 종순일이라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채무자들을 불러 마태복음 18장을 읽어주며 채무문서를 태우고는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초대 교인들은 성경을 수단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성경에 담긴 목적에 따라 순종한 것입니다.
△김=신앙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경우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인지, 기독교를 생활에 접목시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임 교수님께서 문화전문가로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임= 본질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로군요. 기독교 문화를 논할 때 두 가지 해석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즉 디모데전서 4장 3~5절과 로마서 12장 1~2절을 문화적 변혁의 모티브로 봅니다. 문화를 적대적 이분법적으로 보면 딜레마에 빠지기 쉽습니다. 창조신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한다.”는 말씀처럼 타락의 죄의 현실을 즉시하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김= 성경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적용하다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의 진리와 신앙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라 봅니다. 혹여 사회에서 기독교의 필요성, 교회의 필요성, 나아가 하나님의 필요성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까봐 우려가 됩니다.
△이= 한국교회가 성서와 관련해 갖고 있는 문제를 어거스틴의 ‘문자와 영’이란 논문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영은 문자로 표현되지만 세월이 지나면 문자는 영을 가두는 사어가 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영은 자신을 표현하는 낡은 언어를 깨뜨리고 새로운 표현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성서는 영적인 부분을 더 많이 다루었고 그 에너지로 사회와 교회를 변혁시켰습니다. 그러나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한국교회의 문화와 교리, 신학이 영을 가두는 낡은 문자가 되었습니다. 문자주의가 되면 교리화가 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옛날의 언어에 갇혀있는 영이 새로운 문자를 요구하는 이른바, 종교개혁의 시대에 직면했다고 봅니다.
△임=신앙은 자기 생각을 초월해야 하는데, 성경이 우리를 끌고 가려는 새로운 세계가 있는데, 좁고 힘든 길 보다 넓고 편한 길 가려는 힘의 역학관계(세상문화, 소비문화)가 작동하면 내식으로 해석하게되지요. 값싼 은혜로 성경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한국교회의 위기입니다.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변화에는 이야기 구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변화된 후,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섬기며 사회발전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네러티브 말입니다. 그러나 21세기 기독교인의 네러티브는 예수를 믿은 후 좋은 자리에 갔다는 식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그러한 내러티브가 성공한 삶이라고 보는, 잘못된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왕왕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기독교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복을 잘못된 방식으로 구가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기독교가 복음으로부터 일탈된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봅니다.
△김=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성서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가 반성하게 됩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는 말씀들 부탁드립니다.
△이= 이젠 책임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대안을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좌담회에서 대안을 모색 후, 교인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서구 2000년의 경험을 우린 120년 동안에 걸쳐, 선교 사역이 갖는 시련의 역사를 압축해서 빠르게 경험했습니다. 단 한 가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개혁’이겠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전야와도 같습니다. 성공 지향적이고 물질적인 모습들과 권력, 타협 등의 세속적인 성향이 교회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이는 종교개혁 직전의 유렵교회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이 불안정한 시기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교리신학이 아닌 본문으로 돌아가는 것, 이겠습니다. 양식 있는 크리스천의 종교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날 때 시작됐습니다. 바로, 본문이 그들에게 지시하는 명령을 자기 삶에서 실천하는 것 말입니다.
△임= 지난 과거, 하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우리에게 성서를 통한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번 100주년을 맞아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거품을 거둬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우린 무엇을 자랑했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고 우리가 한 것처럼 자랑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행위, 교회의 물량주의, 세속화에 무력하게 동조하는 모습은 세상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한국적인 교회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왔습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언제 하나님께서 드림줄을 대고 심판하실지 두려운 마음이 큽니다.
△김= 한국교회 이래, 최고의 위기에 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너무 형식적인 거품이 많은데 말입니다.
△임= 일단,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의미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이 기본은 바로 말씀을 뜻합니다. 성도 스스로가 말씀으로 돌아가 본질에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때를 주시기 마련입니다. 말씀이 성품을 형성하고, 그러한 교인들이 모여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통해 삶이 꽃피어 문화가 된다면 믿음이 있는 삶이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공인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초대교회는 예수님 돌아가신 후 3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전한 기독교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역교회와 유지들의 도움으로 신학교와 건전한 교회를 세워, 교회의 건전성이 유지하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들의 건전한 신앙의 삶이 타인에 의해 인정을 받아, 결국 기독교가 로마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바탕으로한 신학적 인력과 물질적 지원을 합쳐 건전한 토대를 이루어 나가야, 개인적 신앙의 실천이 한데 모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1938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온 케이블 선교사는 “이 나라 사람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고 반포하는 일이야 말로, 이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래없는 부흥 및 성장 요인을 우리는 전적으로 성경을 본다. 전도를 위해 설립한 성서공회는 강력한 복음전도기관이나 다름 없을 뿐더러, 한국 교인들이 지극히 성서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일제 말기에 해당하는 암흑기를 견디게 한 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서를 반포하면서 끊임없이 성경을 읽히는 운동을 했던 성서공회가 이 시기에 다시 한번, 그 기능을 다하길 바랍니다.
△임= 말씀완역 정신이 그러하였듯이 21세기에는 더욱 더 정확한 번역을 노력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번역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웹 2.0세대에 맞는 성서 보급에도 노력해주길 주길 바랍니다.
△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밤이 어두운 것은 이제 곧 새벽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내부 스스로가 한국 교회의 반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 좋은 시작이라고 봅니다. 성격이 얼마나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말씀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 역시 좋은 토의였다고 봅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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