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내일’ 서정민 교수에게 듣다… “카이로의 봄… 복음 꽃망울 맺게 하자”
역시 영원한 권력은 없다. 지금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에 시민혁명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튀니지의 23년 장기독재 정권이 무너지더니 30년 철권통치의 장본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지난 12일 권좌에서 물러났다. 예멘과 알제리 이라크 바레인 시리아 등도 속속 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이 밖에 수단과 사우디아라비아, 팔레스타인 등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5000년 중동지역 역사에서 레바논을 제외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민혁명이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었다.
튀니지와는 이집트 상황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1000만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독교인 상당수가 시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대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서정민(46)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집트 혁명은 남성주도 가부장적 인식체계를 바꾸는 역사적인 단초가 되고 있다”면서 “향후 중동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 자유화가 인정되는 등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15일 밝혔다. 서 교수는 이집트에서 석사학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 생활 등 10여년을 현지에서 생활한 중동 전문가다. 김 교수로부터 이집트 시민혁명과 기독교선교 전망에 대해 일문일답으로 풀어봤다.
-중동 평화의 지렛대 이집트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
“혁명의 맛을 본 민중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 혁명과 반혁명적 과격성은 늘 충돌하면서 상호 접점을 찾아간다. 이집트는 다행히 무바라크가 생각보다 빨리 하야하는 바람에 안정을 찾고 있다. 하지만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봇물은 이집트에서 탄력을 받아 아랍권 전체로 흘러나갈 전망이다. 국가마다 서둘러 정치개혁과 복지정책 확대를 약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주도형 경제의 틀도 크게 바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가장 중요한 중재자인 이집트의 역할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다.”
-이집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튀니지와 이집트 두 나라 모두 군부가 권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군부와 민주화 세력 간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오는 9월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까지 변수가 많다.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부가 재집권할 가능성과 야권 연합이 후보를 낼 수도 있다. 집권할 의사가 없다는 이슬람형제단의 향후 행보도 관심거리다. 어느 세력이든 단독으로 정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2개 세력이 연합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집트에서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카이로에 ‘무까담’이라는 지역이 있다. 속칭 쓰레기마을이다. 기독교인 20만여명의 집단거주 지역이다. 대부분 사람은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겨우 살아간다. 이들에게 주일은 아주 특별하다. 마을 언덕에 있는 동굴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지금까지 이들에게 저항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 역시 지배층에 복종하면서 살아 왔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카이로 전역을 다니면서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활개를 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5년 이상 지속됐듯이 이집트 혁명이 안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집트 시민혁명이 중동지역 기독교에 미칠 영향은.
“단순한 독재 타도 혁명이 아니다. 보다 큰 틀에서 보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사상혁명에 가깝다. 그동안 이집트 사람은 저항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절대복종이 미덕이었다. 수천년 동안 사막 유목생활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착문명과는 달리 생사를 결정하는 우물 혹은 오아시스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을 해야 했다. 늘 외부의 적과 싸우기 위해 강력한 유대가 필요했다. 생존을 위한 전투는 남자들 몫이었다. 가장 강력한 가문이나 집안의 남자 어른에게 모든 지도력과 권력이 주어졌다. 따라서 부족장의 권위와 명령이 절대적이었다. 이 전통의 바탕 위에 이슬람교가 시작됐고, 종교적 해석이 모두 남자에 의해 이뤄지면서 남성 중심의 사회는 더욱 강화됐다.”
-이슬람교의 영향력도 급속도로 약화되는가.
“이집트 집권세력의 부패와 이슬람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전부터 정치와 종교는 엄밀히 분리됐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왕권을 잡은 뒤부터 그래왔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이슬람이 아니다. 이집트의 법체계도 유럽과 프랑스, 독일 실정법을 쓴다. 경제 시스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형태를 절충했다. 따라서 이슬람과 이집트 사회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면 안 된다. 요즘 이집트의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것은 하루에 5번 올리는 예배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빵과 안정된 일자리다. 권력이 무너진다고 이슬람이 함께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슬람의 영향력이 다소 줄어들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중동 선교전략은 어떻게 짜야 하는가.
“이집트에선 그동안 기독교선교 자체가 불법이었다. 무소불위의 정권이 없어진다는 것은 다원화, 소수파 권익보호, 기독교 선교자유화 등이 가능하다. 따라서 크리스천들도 강력한 시민사회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집트 기독인은 평균적으로 무슬림보다 지적 수준이 높은 편이다. 신분 상승은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일부 장관과 국회의원 등을 형식적으로 등용하기는 한다. 이집트 기독교인은 대부분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요즘은 주일에 쉬는 상점이 많을 정도로 기독교 문화가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 이집트 사회가 점차 다원화 사회로 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집트는 사회 유동성이 매우 낮은 나라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소용이 없다. 젊은이들의 고민은 일자리를 얻는 것이다. 85%가 이슬람이지만 오히려 기독교를 믿는 집안이 더 엄격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고집한다. 우선 다원화된 사회에 맞게, 중기적으로는 요동을 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선교활동이 자유롭게 보장받을 수 있는 때를 대비해 적극적인 선교 계획도 필요하다.”
-학창시절 성령세례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신앙생활은.
“종교와 관련된 얘기는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자칫 오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고등부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녔다. 조용기 목사님으로부터 성령세례도 받았다. 특파원과 교수가 되는 꿈을 그 때 꿨다. 대학에 들어가 아랍어를 전공하고 이슬람 세계의 정치를 전공하다 보니 균형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해가 잘 안될지도 모르지만 학자로서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종교와도 일정 거리를 두고 있다. 퇴임하면 신앙생활을 다시 회복할 생각이다. 물론 새로운 계기가 생긴다면 당겨질 수도 있다.”
글 윤중식 기자·사진 신웅수 대학생기자 yunjs@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