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Է:2011-01-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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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조미자]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어른들이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 묻는 게 거의 고정되어 있다고 한다. 몇 살인지, 몇 학년인지, 또 가족은 몇 명인지, 친구는 몇 명인지,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답이 거의 숫자로 나오는 질문이다. 어른들의 질문에 답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고 공감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우리 어린이를 만나면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친구 이름은 무언지 일부러 숫자가 나오는 답을 피해서 묻게 된다.

여름에 깊은 산속의 휴양림을 가게 되면 거기는 동호수가 없다. 소쩍새, 두루미, 제비꽃, 원추리, 종달새, 편백나무…. 그것들은 며칠간 머물 통나무집 이름이다. 숫자에서 헤어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도시의 진부한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얻은 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달력의 이름을 마음의 움직임이나 자연, 또는 풍경의 변화를 보고 지었다. 부족마다 달랐겠지만 인상적인 달 몇 가지를 들면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3월은 마음을 움직이는 달, 4월은 씨앗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달, 5월은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7월은 열매에 빛을 저장하는 달, 11월은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2월은 무소유의 달, 침묵의 달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다. 그 인디언들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며, 마치 금언처럼 달력에 새기며 말없이 내면을 응시하며,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 것 같다.

해마다 3월이면 나는 학교 선생님들과 새 학기를 시작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인디언 달력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 있고 신명나는 학급을 경영해 보라고 격려한다.

계절은 이어져 7월에는 학생들에게 가을에 튼실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어떻게 하면 빛을 저장할 방학을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11월, 황망하고 바쁘게 돌아치다 아무것도 해놓지 못해 허탈해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는 이름을 들려준다. 그런뒤 귀엣말로 나직이 속삭인다. “아직 늦지 않았어. 11월과 12월. 앞으로 남은 육십일로 우리는 기적 같은 일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새 달력을 걸어본다. 미지의 날들로 가슴이 달뜬다.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신이 내려준 선물들. 값지게, 후회하지 않게 보낼 것을 소망한다. 또한 그 시간들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더 많이 쓰여 지길 소원한다.

한동안 고요 속에,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머물러 본다. 눈을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눈발이 희끗희끗 날린다. 올들어 내리는 첫 서설(瑞雪)인가 보다. 오늘따라 나뭇가지를 휘감는 삭풍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조미자 소설가 성남 탄천초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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