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시력자 위한 미술 관람 가이드, 우리가 직접 만듭니다”

입력 2025-09-02 01:06
리움미술관의 배리어프리 실천 워크숍 ‘보자 보다 보니까’ 참가자들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컨퍼런스 룸에서 저시력 관객을 위한 관람 매뉴얼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컨퍼런스 룸. 블루베리 조, 망고 조, 딸기 조 등 조별로 나뉜 이들이 삼삼오오 토론하고 있었다. 저시력 당사자와 워크숍을 돕는 전문가 ‘퍼실리테이터’로 구성된 이들은 여느 모임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조합이었다.

리움미술관의 포용적 미술관 실천 ‘감각 너머 2025’ 교육 프로그램 일환으로 열린 워크숍 ‘보자 보다 보니까’를 참관했다. 지난 7월 18일부터 시작해 매주 금요일 진행해 온 워크숍은 벌써 8회 차였다. 이들의 임무는 저시력 관객을 위한 미술관 관람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이다. 최종 결과물은 10회 차에 발표한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전맹과 달리 저시력은 스펙트럼이 넓다. 그래서 매뉴얼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이들은 이구동성 말했다. 예컨대 딸기 조만 해도 현대미술가 김보라씨는 사물의 중심만 보여 시야가 좁은 반면, 서점에서 일하는 현지수씨는 한쪽 눈만 보인다. 비슷한 색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된 것처럼 보이는 이도 있다.

퍼실리테이터 정지윤씨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접근성 정책을 담당하며 시각장애 프로그램을 연구했지만 이처럼 저시력을 유형화한 것은 처음이라 신선하다”고 말했다.

저시력 당사자인 김씨는 “저시력자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우리의 문제를 고민하는 기회가 마련돼 반갑다”고 했다. 현씨는 “저시력은 스펙트럼이 넓어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답은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며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인터랙티브 스토리 게임 방식을 차용해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갈 거 같다”고 말했다.

블루베리 조는 진도가 빨랐다. ‘N번째 매개자’라는 이름 아래 ‘저시력 관람자를 위한 심리적 접근성 개선 영상 매뉴얼’을 만들어 이날 리움미술관 전시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조원 가운데 흰색 지팡이를 짚는 장근영씨가 모델이 됐다. ‘심리적 접근성 개선’은 저시력 장애가 덜 눈에 띄는 전시 관람 환경을 말한다. 사전 신청을 통해 관람 안내 도슨트가 저시력 관객의 이동과 관람을 돕는다.

도슨트를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는 저시력 관객. 이한형 기자

가령 장씨가 미국 현대미술가 로니 혼의 작품에 대해 물었을 때 도슨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100개의 사진이 걸려 있고, 높이는 근영님 눈높이 정도. 5개에서 8개 정도로 작품이 묶음처럼 나란히 걸리고 흑백 컬러 둘 다 있네요.” “화면에는 얼굴이 가득 차있어요. 표정은 조금 슬프고 어딘가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거 같아요.”

워크숍은 리움미술관 교육연구실 김태림 학예연구원이 외부 전문가 2명과 공동 기획했다. 저시력 배우이자 공연 기획자인 ‘힘빼고 컴퍼니’ 이성근 대표와 공연 예술 전문 출판사 ‘1도씨와 온도들’ 허영균 대표가 그들이다. 이 대표는 “저시력은 전맹과 달리 볼 수 있다. 촉각이나 청각으로 대체하지 않고 잔존 시력으로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 학예연구원은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들이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