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가 없어 폐교되는 초등학교도 많다고 한다. 아이가 사라지는 시대에 어린이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북극곰의 이순영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유였다.
최근 서울 마포구 북극곰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어린이책’이 아닌 ‘그림책’이라는 말을 선호했다. “그림책은 어린이만을 대상 독자로 하지는 않습니다. 전 연령이 함께 볼 수 있는 장르지요. 특히 시각적인 데이터가 무척 중요한 시대인 요즘 그림책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유아가, 어린이가, 어른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 북극곰은 그림책 출판사였다.
번역가이기도 한 이 대표가 출판사를 경영하리라곤, 그것도 그림책을 만들어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북극곰 문을 연 것이 2009년, 첫 책을 낸 것이 이듬해니 역사가 그리 길진 않다. 그가 그림책에 빠진 것은 우연, 어쩌면 운명이었다.
공놀이 좋아하던 개구쟁이서 문학소녀로
이 대표는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 그림책과 위인전도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곤 했지만 할머니 댁이 있던 강릉 시골의 들과 산으로 다니며 뛰놀던 때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강릉 주택가 골목에서는 고무공으로 야구를 하기도 하면서 이웃집으로 ‘도망간’ 공을 주우러 다녔던 기억도 생생하다. 활달했던 개구쟁이 꼬마는 중학교에 가서는 조용히 공부만 하던 평범한 아이가 됐다.
중학교 때는 영어에 자극을 받았다. 교과서만이 아니라 노래와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열정적으로 가르치던 젊은 영어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이 대표는 “언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비교 언어학을 공부하면 재밌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소녀였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단짝 친구와 프랑스 작가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를 읽고 교환 일기를 쓰기도 했다. 주말이면 강릉 시내 서점에서 온종일 책을 읽었다. 이 대표는 “자유롭게 책을 읽도록 허락해 주셨던 서점 주인분들께 지금도 감사함을 느낀다”면서 “그때 좋아했던 책과 밀접한 출판 쪽 일을 한다는 게 뭔가 연결이 돼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어로 밥벌이하다 그림책과 인연을 맺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지만 막상 공부는 뒷전이었다. 4년 내내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 동아리에 온 힘을 쏟았다. 보육시설 관계자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까지 받았다고 한다. 졸업 후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던 이 대표는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다 서울 전세금을 빼서 영국 유학을 결심한다. 돌아와서는 영어로 밥벌이를 했다. 영종대교가 지어질 때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며 통역과 번역을 했고, 해외 TV 프로그램을 수입해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에서도 근무했다. 마지막으로 4년 일했던 통신업체의 직장 생활이 지루해질 무렵,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남편 이루리 작가를 만났다. 대학 시절 문학회 활동을 하며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남편은 인생 2라운드를 고민하던 때였다. 이 대표는 “남편과 둘이서 ‘남은 인생 뭔가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면서 “한때는 문학소녀였던 저와 당시 번역과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던 남편은 자연스럽게 출판사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제가 과연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계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그에게 결혼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북극곰의 탄생, 영혼의 양식이 되는 책을 만들자
출판사를 차린 2009년 무렵은 환경문제가 이슈가 되던 시기였다. 둘은 자연스럽게 북극곰을 떠올렸고, 출판사 이름도 북극곰으로 정했다. 이 대표는 “웃기거나 찡하거나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교훈을 앞세우지 않고, 그림과 문학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위로도 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 책은 남편이 글을 쓰고, 남편 후배인 배우리 작가가 그린 ‘북극곰 코다 첫 번째 이야기, 까만 코’였다. 책을 들고 한 대형서점 문을 두드렸다. 두렵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서점 MD(상품기획담당)는 “창작 작품이네요”라면서 끝까지 읽어 줬다. 이 대표는 “마지막에 웃으면서 좋다고 하는데 감동이 밀려왔다”면서 “아직도 그분의 성함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까만 코’는 성공적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0년 우수교양도서로 뽑히는 행운도 얻었다. 둘은 용감했다. 영어 버전을 만들어 달랑 책 한 권을 들고 2011년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참가했다. 그리고 바로 이스라엘과 터키로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 대표는 “첫 책으로 수출 계약도 맺었으니 그때만 해도 출판이 쉽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그땐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사랑을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응원이 필요한지를 잘 몰랐었는데 15년이 지나고 나니, 직원 10명인 출판사가 생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시는지 깨닫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수줍게 내미는 과정인 것 같아요. 너무너무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짧게는 1년 남짓, 길게는 몇 년씩 공들여 매만지고 매만져서 발표하는 아주 설레는 과정이랍니다. 작가들의 이야기를 편집자와 함께 공들여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거지요. 특히, 그림책은 시각예술인 그림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혹은 더 재미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모두를 위한 그림책
북극곰은 어느새 350여종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역시 ‘까만 코’는 북극곰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책이고 이 대표에게도 애착이 가는 책이다. 무모하게 도전했던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인연을 맺었던 엠마누엘레 베르토시 작가와 함께 ‘까만 코’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를 만들었고, 첫 번째 이야기도 그와 그림 작업을 다시 했다. 전 세계 11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성과도 얻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그림책이 세계에서도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수출하기 어려웠던 영미권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한국의 그림책을 찾고 있다고 한다. 북극곰에서 번역서를 제외하고 출판한 창작 도서는 150종인데 이 중 46종에 106건이 수출 계약됐다. 평균 1년에 7건 정도가 계약된 셈인데 지난해에는 15건으로 두 배로 늘었다. 올해는 더 공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토끼는 어쩌다 달에 살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달 토끼’도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수출됐다. 이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것도 세계 시장에 통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면서 “한국 시장이 좁다면 전 세계 독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 바로 그림책의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으로,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다양한 연령의 독자로 확산하는 것이다. 그는 “생각만 해도 즐겁다”고 했다. ‘달 토끼’도 ‘움직이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제나 기본을 생각한다. 이 대표는 “소박한 오늘의 꿈은 어린 독자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 대표는 2025년은 16개 민간단체가 모인 ‘책의 해 사업단’이 정한 ‘그림책의 해’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심을 부탁했다. ‘그림책의 해’의 슬로건은 ‘모두를 위한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어르신까지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