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보인다] 창작뮤지컬 ‘황구도’

입력:2000-01-12

글자 크기 조정

감미로운 노래와 현란한 율동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오는 23일까지 동숭홀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황구도’(조광화 작,최용훈 연출)가 따분할 수 밖에 없는 무대라 하겠다.어두운 조명의 무대장치가 시종일관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람들의 인면수심에 대해 왈왈거리는 잡종개의 코러스도 드라마를 이어주는 에피소드 또는 양념으로 제기능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집중력을 깨는 잦은 암전,지나치게 코믹한 의상,멜로풍 리듬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불협화음,피아노선까지 노출되는 엉성한 세트….하지만 이 모두가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황구도’에 빠져든 관객이라면 인간보다 진한 사랑의 아픔에 눈시울이 젖을 법하다.주인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을 맹세한 황구 아담(조승룡)은 예쁜 스피츠 캐시(이재은)를 만나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스피츠끼리 접종시켜 애완용 새끼를 낳게 하려는 집주인(주용만)의 농간으로 깨진다.여자를 수시로 바꿔가며 보신탕을 즐기는 게걸스런 인간의 욕심을 주용만은 웃음나는 연기로 잘 보여주었다.누렁이 아담역의 조승룡이 부르는 열정의 테마곡은 사랑하는 캐시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 캐시역의 이재은은 깜찍한 외모와 은은한 목소리로 뮤지컬 데뷔 무대에 일단 성공했다.
캐시를 홀로 남겨두고 거리를 헤매는 아담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랑을 얻으려는 눈썹(전수경)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머리 속에는 온통 캐시 생각뿐.바람둥이 귀족견 거칠이(강성진)와의 불행을 목격한 아담은 주인을 물어뜯고는 캐시를 데리고 도망치지만 둘 사이 마음의 벽이 쌓여 있다.바람부는 바다에서 캐시가 주인집의 푹신한 소파를 그리워한다고 여기는 아담.의심은 불신을,불신은 파멸을 낳고….
지난 93년 연극으로 초연된 ‘황구도’는 이기심에 물든 인간의 사랑을 개들의 그것에 비유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세월이 흘러 아담이 캐시를 찾아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행복에 젖는 순간,모든 것을 뒤로하고 조용히 눈을 감는 캐시의 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뮤지컬 ‘황구도’는 그러나 커튼콜에 급급한 나머지 마지막 장면을 서둘러 막내려 감동을 한꺼번에 앗아버리는 아쉬움을 남겼다(02-764-3375).
/이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