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정치가 콘텐츠가 된 시대

올해 국정감사는 유튜브에서 조회수를 겨루는 무대로 변했다. 정책 질의 대신 고성과 욕설, 합성사진과 몸싸움이 오갔고, 그 장면들은 순식간에 편집돼 쇼츠로 퍼져나갔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아닌 카메라를 의식했다. 그 결과 국감장은 일부 의원의 홍보 무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국회가 정책 감시가 아닌 콘텐츠 생산의 장이 된 셈이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입에 담기에도 거북한 저급한 막말이 오갔다. 반말, 욕설 문자에 이은 여야 의원들의 맞고발 사태로 번졌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얼굴을 합성한 ‘조요토미 희대요시’ 이미지를 공개했다. 사법부 수장을 조롱한 전례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는 국감 직후 유튜브 구독자 3만명을 돌파했고, 정치후원금도 조기에 한도를 채웠다. 품격의 손실이 인지도의 이득으로 보상되는 풍경, 이것이 올해 국감을 상징한다.

국회의원의 윤리 감수성은 더 낮아졌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딸 결혼식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감 기간 중 국회에서 결혼식을 치러 피감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축의금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비판 보도를 한 언론을 회의장에서 퇴장시켰다. 뒤늦게 사과했지만 국민이 본 것은 권력의 오만이었다.

제도권 언론은 아무리 진영이 갈려도 반론과 교차 검증, 최소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다. 기자는 불편하더라도 “근거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유튜브는 검증이 아니라 확신을 파는 매체다. 구독자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온다. 질문보다 공감, 검증보다 동의, 균형보다 응원이 중요하다.

유튜브 구조 속에서 정치인은 빠르게 성과를 얻는다. 좋아요와 조회수는 후원금과 직결되고, 알고리즘은 자극적 발언을 더 멀리 퍼뜨린다. 그러면 정치인은 현실보다 환호에 민감해진다. 보좌관들이 국감장에서 의원들이 소리치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며 “쇼츠 잘 나왔다”고 말하고 의원들은 카메라 각도를 먼저 고민한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72%, 국민의힘 36.7%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당대표 선출 직후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국민의힘 정당 해산 추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못할 것이 없다”고 답했다. 서영교 의원은 열린공감TV의 확인되지 않은 녹취를 인용해 조 대법원장의 ‘모종의 회동’을 주장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조원철 법제처장은 유튜브에서 과거 이재명 대통령 변호인 시절 논리를 되풀이하며 중립성 논란을 자초했다. 보수 정당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번 국감의 화제와 파장은 여권 쪽이 훨씬 컸다.

오늘의 정치 보상 구조는 단순하다. 자극적인 발언을 던지면 조회수가 폭발하고, 후원금이 몰리고, 공천 경쟁력이 높아진다. 이런 기이한 순환 구조가 이어지는 한 차분한 정책 질의는 오히려 손해다. 카메라 앞의 퍼포먼스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번 국감 중반까지 474개 기관 중 180곳(38%)이 단 한 번도 질의받지 못했다. 카더라식 의혹 제기와 자극적 장면 연출이 국감의 본령을 완전히 밀어냈다.

이 풍경의 끝은 이미 한 지도자가 보여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에 과몰입하다 현실감각을 잃고 비상계엄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이젠 그 유튜브의 열병이 국회 전체로 옮겨붙는 듯하다. 정치가 유튜브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사실보다 선동이, 논리보다 자극이 앞선다. 좋아요가 곧 영향력이고, 구독자가 곧 지지율이 된다. 숙의와 타협은 사라지고, 극단의 언어가 대화의 자리를 대신한다. 클릭이 국정을 이기고, 쇼츠가 정책을 삼킨다.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국회는 회의장 내 촬영과 영상 편집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고 고성과 몸싸움을 연출해 조회수를 노리는 행태에 대해 윤리위가 즉각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합성 이미지나 확인되지 않은 녹취로 허위 정보를 퍼뜨린 의원에게는 징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감 기간 후원금 계좌를 노출하거나 유도 문구를 넣는 행위도 금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용히 일 잘한 의원이 평가받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가 회복해야 할 것은 카메라 앞의 열정이 아니라 국민 앞의 책임이다. 정치는 카메라가 아니라 국민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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