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1주일 만에 물에 잠겼다. 지난 19일 사연댐 물이 불어나면서 댐 안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가 수몰된 것이다. 큰비만 오면 물속에 잠기는 반구대 암각화를 그대로 둔 채 한 국가를 넘어 세계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세계문화유산 타이틀을 우리가 자랑해도 되는지, 수치가 아닌지 묻게 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변 절벽에 선사시대 인류가 새겨놓은 그림이다. 가로 10m, 세로 3m 크기의 암면에 호랑이, 고래, 사람 등을 그린 300여점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한반도 역사의 첫 장, 한국 미술의 원형이다.
‘반구대 암각화 지킴이’이자 암각화 연구자로 유명한 화가 김호석에 따르면 선사시대 암각화는 유라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발견되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회화성이 높고 그려진 시기가 유목 생활과 정착 생활의 교체기일 가능성이 높아 의미가 크다. 특히 거의 모든 암각화는 동쪽이나 남쪽에 그려져 있어서 북향을 바라보는 반구대 암각화는 이례적인 사례다.
1965년 수문이 없는 사연댐이 건설된 후 이 바위그림은 비만 많이 오면 잠기는 신세가 됐다. 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가 잠기기 시작해 57m가 되면 완전히 파묻힌다. 바위그림의 수장을 막으려면 댐의 물을 빼내야 하는데 수문이 없어서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댐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번에 잠긴 암각화가 수면 위로 다시 나오기까지 최소 한 달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1971년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1995년 국보로 지정됐고, 2009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하지만 암각화 훼손은 계속됐다. 주된 훼손 원인인 침수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4년까지 최근 10년간 암각화가 물에 잠긴 날은 연평균 39일 정도라고 한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그림은 희미해지고, 바위는 부스러져 내리는 중이다.
정부는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암각화 침수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하반기 착공해 2030년 준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유산 등재도 이를 조건으로 가능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암각화 침수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할 것”을 권고했다.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자는 ‘수위조절안’은 사실 20여년 전부터 제안돼 온 것이다. 이에 대해 울산시는 울산 시민의 식수원 역할을 하는 사연댐의 물을 빼면 식수가 부족해진다며 정부에 물 대책을 먼저 마련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인근 운문댐이나 안동댐에서 부족분을 끌어오거나 대체 댐 건설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반구대 암각화는 문화재 보존과 물 부족의 갈등 속에서 모진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런 갈등 속에서 해법을 주도하지 못하고 암각화 수몰을 방치해온 문화행정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세계유산 등재는 이뤄졌지만 사연댐 수문 공사는 시작도 안 했고, 물 문제는 여전히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상 수몰을 더는 방치할 순 없다. 세계문화유산 보존 원칙을 먼저 확고히 내세우고 물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사연댐 수문 공사는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나서서 울산시의 물 부족 문제를 점검하고 대안을 찾아줘야 한다.
15년 전 누런 흙탕물 속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썼던 르포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물속에 잠긴 바위그림 하나가 한국이 과연 문화국가인지 묻고 있다.”
김남중 편집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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