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
2017년 겨울 일본 고베시 산길을 걷던 중 내 귀에 들린 음성이다. 조선학교 아이들을 만난 후 그들 편에 있고 싶어서 마음이 복잡했던 때였다. 뜬금없이 들린 하나님의 음성에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내가 일본 땅을 밟은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였다. 솔직히 일본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나는 늘 아프리카나 제3세계를 생각했다. 일본은 딱 보면 기독교 자체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잘 사는 데 왜 가느냐’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대지진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이 땅은 순교의 피가 흐르는 곳이구나. 하나님이 완악함을 주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깨달았다.
2013년 겨울 처음 도요하시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우리말을 쓰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느낌이었다. 재일조선인 계열 학교 아이들이었다. 순간 겁이 났다.
재일조선인들을 한인교회에 데려오자 “왜 빨갱이를 데려왔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그러한 반응에 나는 마음속으로 반문했다. ‘빨갱이는 예수 믿으면 안 되나.’
요한복음에 나온 가나 혼인 잔치가 생각났다. 주님께서 정결 예식용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신 것처럼 버림받은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맛있는 포도주가 된다. 나는 그 물을 채우는 하인이 되고 싶었다.
재일조선인들을 만나며 사마리아 사람들이 떠올랐다. 해방 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로 원래는 일본 국적이었지만 해방 후 국적을 잃고 “돌아가라”는 말만 들었다. 북한이나 남한에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그들이 터를 잡고 사는 일본에서도 투표권을 못 받는다. 그야말로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한다”고 하신 것처럼(요 4:4) 재일조선인을 통과해야 땅끝이 완성되는구나 싶었다. 이들은 감춰진 보화다. 마지막 때에 열방 구원에 쓰시려나 하는 마음이 든다.
사역 초기 가장 힘들었던 건 한국교회의 무관심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재일조선인의 사역을 돕는 것에 협조하지만 교회적으로는 안 들어주는 모습이었다. 이념과 사상에 매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내 아이들도 “왜 평범한 사역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어느 날 주님이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등산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뜬금없이 들렸다. 내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니. 그때마다 엉엉 울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걸 아니까 거침이 없어졌다. 조선학교의 교문을 처음 열 때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이제는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오늘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랏일에 쓰임 받고 싶다. 포도주 기적의 하인처럼.
우리 가족은 일본 땅에서 14년째 ‘감춰진 보화’ 같은 재일조선인들을 섬기고 있다. “그 땅에 머물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 들은 그 음성으로 충분하다. 주님이 이들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가 여기 있을 이유는 충분하다.
<약력>△1972년 충남 금산 출생 △대전 우송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2011년 4월 대전 정림성결교회,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카이캄)에서 일본 선교사 파송 △저서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
고베(일본)=정리·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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