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DB그룹 제39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는 ‘준비된 스타’ 이동은(20·SBI저축은행)을 ‘메이저 퀸’에 등극시킨 채 화려한 막을 내렸다. 기다렸던 대형 신인의 출현은 반길 일이었지만, 역대 최다 19명의 기권 사태로 그 의미가 퇴색됐다는 점에서 팬들의 씁쓸함은 컸다.
참가 선수 132명 중 14.4%인 19명이 기권했다. 대부분 1라운드 마친 뒤 또는 2라운드 도중 기권했다. 본선 진출자 중에선 2라운드 직후 조모상 부고를 받은 방신실(20·KB금융그룹)이 유일했다.
무더기 기권은 2021년 대회 장소가 레인보우힐스CC(사진)로 바뀌면서 심해지고 있다. 2022년엔 5명에 그쳤으나 2021년 15명, 2023년 14명, 2024년 17명 등 매년 두 자릿수 기록 중이다.
가장 많은 기권 사유는 부상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컷 통과가 쉽지 않아 내린 결정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급기야 ‘내셔널 타이틀’ 대회에서 있어선 안될 사태까지 발생했다. 아마추어 국가대표 박서진양이 동반자 2명의 프로가 기권하는 바람에 경기위원을 긴급히 마커로 투입해 ‘나홀로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되는 것일까.
대회 개최 코스인 레인보우힐스CC를 빼놓을 수 없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미국)가 설계한 코스는 한국의 산악 지형 자연을 그대로 살려 전체적으로 업앤다운이 심하다. 거기에 좁은 페어웨이, 길고 질긴 러프, 유리알 그린 등 메이저 대회 코스 세팅이 더해지면서 여자 선수들이 경기하기 쉽지 않은 코스로 변한다.
한국여자오픈을 주관하는 대한골프협회(KGA)의 기권 방지 규제 미비와 우승자에게 집중된 상금 배분율이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KGA는 기권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기권을 원하는 선수가 경기위원회에 신고만 하면 된다. 반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2019년부터 정당한 기권 사유가 없으면 상벌분과위원회에 회부해 경중에 따라 최고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기권일 7일 이내 사유서와 진단서도 제출해야 한다. KLPGA투어 기권자는 한국여자오픈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올해 한국여자오픈 우승 상금은 총상금(13억원)의 25%인 3억원이었다. 총상금의 15%를 우승 상금으로 책정하는 KLPGA투어 상금 배분율보다 10%가 높다. 이는 곧 우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의 상금액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기권 방지를 위해 강력한 규제를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대회 출전 선수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본보기가 US여자오픈과 US오픈이다. 지난 2일 막을 내린 US여자오픈에는 총 156명이 출전했으나 단 한 명의 기권자도 없었다. 지난 16일 끝난 US오픈에선 딱 한 명만이 경기를 포기했다.
‘기권도 전략’이라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부상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회를 완주하는 것은 당연한 선수의 의무이자 팬과의 약속이다.
정당한 사유없는 기권이 반복되면, ‘어차피 컷 탈락인데 다음 대회에 대비해 경기를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기권하는 게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이 커진다. 팬들의 신뢰를 잃은 투어에 기업이 후원할 리 만무하다. ‘기권 불감증’이 몰고올 파장이 얼마나 클지, 투어 존속까지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통렬히 자성해야 할 때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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