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째 공석인 국립국악원장에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관료 출신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국악계에 파다하다. 문체부가 국립국악원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조직 개편에 나선 것도 국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고위공무원단 가등급(차관보)에 해당하는 국립국악원장은 한국 전통예술의 종가인 국립국악원을 이끄는 자리다. 1951년 국립국악원 설립 이후 1980~90년대 관료 출신 원장 3명을 빼곤 모두 국악계 출신이다. 2000년 공무원과 민간이 모두 지원할 수 있는 개방형 직위로 바꾼 이후에도 국악 전문가들이 왔다. 국립국악원장이 전통예술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요구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김영운 원장이 임기를 마치기 한 달 전 인사혁신처는 국립국악원장 공모에 나섰다. 그리고 면접 등을 거쳐 최종 후보 2명에 대한 인사 검증작업이 이뤄졌다. 두 후보자에게 특별한 결격 사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표가 계속 미뤄지더니 지난해 연말이 다 되어 해당자가 없다고 발표됐다.
그런데, 올 초 국립국악원장 재공모가 나오면서 지원 자격이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31일자 대통령령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으로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연구직공무원을 연구직 또는 일반직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민간 전문가만 지원할 수 있던 경력개방형에서 공무원도 지원할 수 있는 개방형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공모를 통해 최종 후보 3명에 대한 인사검증이 이뤄진 가운데 문체부 실장급으로 결정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악계 관계자는 2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판결을 앞두고 지난해 연말 슬그머니 대통령령까지 바꿔 국립국악원장 재공모를 하는 것이 이상하다”면서 “문체부가 탄핵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알박기’ 하는 것 같다. 국립국악원장 자리를 자체 인사 적체 해소 또는 퇴직 관료의 일자리로 삼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국립국악원은 문체부 소속기관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순환 근무로 와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단과 연구실을 제외한 조직인 기획운영단은 문체부 국장급이 단장을 맡는다. 만약 국악원장까지 문체부 출신이 오면 국립국악원의 일·이인자를 모두 문체부 고위 관료들이 맡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형태가 앞으로 계속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례로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의 경우 예전엔 민간에서 임명됐지만 근래 문체부 국장급이 잇따라 오고 있다.
한편 국립국악원은 문체부가 탑다운 방식으로 조직개편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국립국악원은 기획관리과, 장악과, 국악진흥과, 무대과 등 4개 과로 이뤄진 기획운영단과 달리 연구실에는 하부 조직으로 1개 과도 없는 기형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체부는 국립국악원과 협의 없이 장악과와 무대과를 연구실 아래로 옮긴 뒤 연구 기능은 장악과랑 합치는 방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요즘 전통 콘텐츠의 활용이 중요해진 만큼 전통에 대한 기본 연구가 더 중요해졌다. 학계와 교육계에 도움이 되는 이런 연구는 공익적 역할이 크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립국악원에서만 가능하다”면서 “문체부가 현재 구상한 방식으로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 연구 기능은 대폭 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악계와 공공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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