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쌍특검법’(김건희·채상병 특검법)과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지역화폐법)의 12일 본회의 상정을 거절하자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매우 당황스럽고 경악스럽다”고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이 공개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우 의장의 제동으로 추석 전 이들 쟁점법안을 처리하려던 민주당의 계획도 어그러지게 됐다.
여야 원내지도부와 의장실은 11일 오전부터 3건의 법안 처리 시점을 논의했다. 야당은 오후 법사위에서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들 법안을 차례로 통과시키며 12일 본회의 안건 상정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민주당은 여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대응까지 예상해 소속 의원들에게 14일까지 비상대기할 것도 주문했다.
그런데 예상 밖에 우 의장에게 막혔다. 우 의장은 오후 야당 원내지도부를 불러 “국민 입장에서 의·정 갈등 해소가 먼저라고 판단한다”며 법안 처리 시점을 연휴 뒤인 오는 19일로 미루겠다고 통보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의장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의장실 관계자는 “그만큼 의료대란 문제가 절박한 국민적 과제라고 보고 의장 판단을 야당에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추석에 병원 가면 죽게 생겼는데, 정쟁 이슈를 갖고 필리버스터를 하며 날을 새우는 게 온당하냐”며 “우 의장이 고심 끝에 민주당으로부터 욕 먹을 각오를 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의장이 오후 4시30분 기자회견 예정 사실을 공지하자 야당 법사위원들도 비슷한 시간 국회 소통관에서 ‘맞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야당 의원들은 “의료대란 해결 못지않게 김건희 특검법 처리도 중요한 문제”라며 우 의장의 결정을 비판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장” “법안 무산 시 그 책임은 오로지 의장 몫” 등의 성토도 쏟아졌다.
우 의장이 의·정 갈등 해결이 먼저라며 연휴 이후인 19일에 쟁점법안 처리를 제안했다는 소식에 정 위원장은 “19일로 미룰 것을 오늘내일은 왜 안 되는지 되묻고 싶다”며 “국민들은 이 법을 지금 즉시 통과시킬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고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의료대란 해소를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 가동보다 특검법이 더 시급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정 위원장은 “더 시급한 것이 따로 없다. 둘 다 시급하다”고 답했다.
우 의장이 여·야·의·정 대화를 시급한 현안으로 제시한 건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여야 모두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취지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여당에는 최대 쟁점인 의대 증원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야당에는 협의체 출범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주문했다는 평가다. 의장실 관계자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여야 간 대화와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판단에 쟁점법안 처리를 후순위로 미뤘다”고 설명했다.
김판 박장군 송경모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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