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시는대로 순종했을 뿐인데…” 몽골 복음화 새 길이 열렸다

권오문 몽골국제대 총장의 ‘30년 선교역정’ 스토리

몽골국제대학교(MIU) 졸업생들이 올해 울란바토르 교정에서 동문 모임을 한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뜻대로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이 사람은 유독 자기 계획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캠퍼스 선교를 위해 1993년 몽골로 왔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지인 교회 사역이었다. 몽골 공산주의 붕괴 이후 급속도로 늘어난 길거리 아동을 교육하는 ‘밝은미래종합학교’를 세운 것도, 2002년 전 과정을 영어로 가르치는 몽골국제대학교(MIU)를 설립한 것도 모두 그의 의도 밖 일이었다. 올해로 30년차를 맞는 몽골 선교사 권오문(57) MIU 총장 이야기다. 유창한 몽골어로 교직원과 자유자재로 소통하던 권 총장을 지난달 28일 울란바토르의 MIU 총장실에서 만났다.

알 수 없는 하나님 뜻

몽골 고비알타이 아이막의 교회 목회자들과 권 총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이 함께한 모습. 권오문 총장 제공

홍익대 기계공학과 85학번인 권 총장은 졸업 직후 아무 연고도 없는 몽골로 왔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을 열심히 했던 터라 CCC 간사나 신학대학원 진학도 고민했지만 결국 선교사로 살기로 작심하고 떠나온 몽골행이었다. 대학 3학년 때 진로를 놓고 했던 금식 기도가 계기였다. “당시 친구들은 취업과 유학, 대학원 진학 등을 두고 고민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저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이때 간절히 기도하던 중 확신을 얻었습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그는 1년여간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할렐루야교회 청년부를 섬기며 교회 사역을 배웠다. 이때 선교단체에서 만난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고 함께 파송 국가를 고민했다. “아내는 대학 재학 중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활동했습니다. 둘 다 대학선교단체 출신에 해외선교를 꿈꾼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어디로 가든 함께 대학생 선교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단체가 이들 부부에게 제안한 국가는 몽골이었다. 90년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몽골은 서구 문화와 시장경제 유입 등 급격한 변화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학생 제자훈련에 강점이 있던 이들은 몽골 청년에게 예수를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때 그와 아내의 나이는 각각 27세, 26세였다.

올해로 몽골 선교 30년 차를 맞은 권 총장 부부가 지난달 28일 학교 인근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권오문 총장 제공

현지 대학에서 몽골어를 익히던 부부에게 1년 뒤 예상치 못한 제안이 왔다. 현지인 성도 30~40명이 모이는 교회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동료 선교사가 유학을 떠나야 하니 자신이 개척한 현지인 교회를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제 목표와는 달라 고민했지만 이내 수락했습니다. 저 보기에 좋은 게 무조건 최선은 아니니까요. 아내한테는 ‘하나님 지혜와 능력이 우리보다 훨씬 나으니 그분의 이끄심에 따르자’고 설득했습니다.”

94년 현지인 교회인 게렐트이레두이교회를 맡은 그는 목회 경험이 없는 평신도 선교사였지만 아내와 매일 새벽기도를 하며 제자훈련에 힘썼다. 3년 뒤 성도 수가 100명을 넘기고 교회가 안정기에 들어서자 권 총장에게 또 다른 요청이 들어왔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몽골 다음세대를 위한 학교 운영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며 30년간 선교해왔지만 매번 정말 어렵다고 느끼는 게 있습니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주님이 맡긴다는 겁니다. 교육도, 가정사역도 모르는 제게 길거리 아동을 보듬는 학교를 맡긴다니…. ‘할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90년대 초반 몽골 사회는 자본주의 도입으로 산업이 전면 재편되면서 실업 문제가 두드러졌다. 그러자 가장의 실업으로 깨지는 가정이 늘면서 집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이 길거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이 거리를 배회하다 가정집을 두드리며 구걸과 강도질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국 목회자가 권 총장에게 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그의 ‘길거리 아동 사역’이 시작됐다. “학교 설립만 도우려 했는데 원래 학교를 맡기로 한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돼 제게 운영을 부탁했습니다. 경험과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게 상식 아닙니까. 기도로 다시 방향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오문 총장이 1997년 10월 현지인 교회인 게렐트이레두이교회에서 이취임예배를 드린 뒤 성도들과 함께한 모습. 권오문 총장 제공

기도 후 제안을 수락키로 결정한 그는 97년 교회를 현지인 목사에게 이양하고 길거리 아동을 교육하는 ‘밝은미래종합학교’ 운영에 전념했다. 교육부 인가를 받기 위해 몽골 교육감 등을 접촉하던 권 총장은 2년 뒤 정부 관계자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길거리 아이들이 워낙 사회 이슈다 보니 우리 학교가 현지 언론에 몇 차례 소개됐습니다. 이를 정부 관계자가 보면서 대통령과 만남의 자리도 마련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대학교가 그가 지금 몸담고 있는 MIU다. 2001년 나차긴 바가반디 몽골 전 대통령이 부지를 기증해 이듬해 문을 연 MIU를 설립할 때도 그는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교수 경험도 전무하고 국내와 몽골 교육계 어디에도 인맥이 없었다. 주변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몽골 대통령은 영어로만 교육하는 차별화된 대학, 경쟁력 있는 대학을 원했습니다. 이번에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게 고(故) 김영길 한동대 전 총장이 ‘몽골에 기독 대학을 세워야 한다’며 해준 말이었습니다. ‘대학을 세우면 민족을 살릴 수 있다.’”

미국 등 해외 교포의 도움으로 대학 건물과 학습 기자재를 마련한 그는 교수진 80%를 국내외 대학에서 수학한 선교사로 꾸리면서 점차 진용을 갖춰나갔다.

청렴한 기독 인재가 나라를 바꾼다

MIU엔 현재 국제관계학 경영학 컴퓨터공학 등 14개 전공 45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전교생 25%는 유학생인데 중앙아시아뿐 아니라 영미권 학생도 있을 만큼 국적이 다양하다.

2016년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와의 ‘2+2 프로그램’ 협약식에 참석한 권 총장(가운데). 권오문 총장 제공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와 ‘2+2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해외 진출을 꿈꾸는 인재의 지원도 늘었다. 해당 프로그램 참여자는 각 캠퍼스에서 2년씩 수학하고 공동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교수진도 43개국서 온 이들로 꾸려졌다. 권 총장은 “스페인이나 푸에르토리코 등 멀리서 온 교수 중 일부는 북한 선교에도 관심을 보이더라. 하나님의 섭리가 참 신기하다”며 웃었다.

그는 2년 전부터 지역 교회와 협력하기 위해 몽골 지역 곳곳을 방문하고 있다. 수도에 인구 절반 이상이 집중된 몽골의 ‘쏠림 현상’을 해소해보려는 시도다. 교회학교 청소년이 MIU에 진학하면 4년간 등록금 절반을 면제해주는 프로그램 등을 지역 목회자에게 제안한다. 단 졸업 후 고향서 4년간 교사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권 총장은 “기독교인 비율이 낮은 몽골 시골에서 아무 보수 없이 교회를 섬기는 현지인 목사를 격려하고 지역 사회도 살리고자 시작한 일”이라며 “이렇게 공부한 제자들이 각지 학교와 교회에서 활약한다면 몽골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정의하는 성공은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며 좁은 길을 걷는 것’이다. 그 자신은 물론이고 MIU 졸업생도 이렇게 살길 희망한다. “살면서 하나님의 길을 택하는 게 참 어려워요. 주님은 우리 수준을 넘어서는 분입니다. 인간의 최선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 길을 가다 결국 돌아보면 은혜인 걸 깨닫게 되거든요. MIU에 와서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가 40% 정도입니다. 이들이 좁은 길을 따라가는 청렴한 몽골의 미래 지도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울란바토르(몽골)=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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