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동심으로부터 복음의 동이 트다

어린이전도협회 동티모르 선교지를 가다

동티모르 메띠나루 마을 어린이들이 지난달 29일 열린 어린이전도협회 새소식반 성경 모임에서 기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티모르(Timor)섬 동쪽 편을 뜻하는 국가 동티모르는 우리 국민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된 것이 적은 곳이다. 대한민국 상록수부대가 평화유지 활동을 펼친 나라, 영화 ‘맨발의 꿈’(2010)을 통해 한국인 축구 감독이 척박한 현실에 놓인 아이들과 팀을 이뤄 국제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적의 실화를 보여준 나라 정도가 그나마 동티모르를 기억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우리나라 강원도보다 작은 땅(약 1만5000㎢)과 적은 인구(139만5062명, 2023년 UN 통계)를 보유한 나라. 하지만 발 딛는 곳마다 이 땅에서 펼쳐지는 기적들은 결코 작지 않다. 최근 찾아간 동티모르에선 이 땅의 미래를 책임질 이들이 변화를 길어 올릴 마중물을 붓고 있었다.


변화의 씨앗, 복음 품은 어린이들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차에 몸을 싣고 동쪽으로 40여분 달려야 당도하는 메띠나루 마을. 마을에 들어서자 골목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소와 돼지, 강아지, 원숭이, 닭들이 동네 아이들과 뒤섞인 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마을은 수십 년 전부터 ‘무당 마을’로 불렸다. 지난달 29일 현장에 동행한 어린이전도협회 동티모르 김진수(55) 선교사는 “‘우마 룰릭’이라 불리는 무당집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었는데 바위, 흙, 큰 나무, 이름 모를 신상 등 각양각색의 우상들이 들어차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티모르 수도 딜리시의 동쪽 끝 크리스토 레이 지역에 세워진 전통 사당 ‘우마 룰릭’. 뒤편 언덕으로 천주교인들이 사순절을 묵상하며 기도하도록 만들어진 27m 높이의 예수상이 보인다.

동티모르는 국민 97%가 천주교 신자인 가톨릭 국가다. 하지만 지역마다 주술과 미신이 깊이 뿌리 내려 우상 숭배가 만연해 있다. 작은 마을부터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우마 룰릭’을 찾아 소원을 비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일상화돼 있다. 딜리시 동쪽 끝 크리스토 레이 지역에는 천주교인들이 사순절에 묵상하며 기도하도록 27m 높이의 예수상이 언덕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예수상으로 향하는 진입로에도 우마 룰릭이 버티고 있는 게 동티모르의 현실이다.

마을을 돌아보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정집 마당에서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테툼어로 찬송 ‘내게 자유 주신’을 부르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매주 한 차례 열리는 어린이전도협회 새소식반 성경 모임 모습이다. 교사 주스띠나(22)씨가 성경을 펼치며 메시지를 전하자 앳되어 보이던 아이들의 표정이 금세 진지해졌다.

유현복(왼쪽) 어린이전도협회 동티모르 선교사가 새소식반에 모인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암송하는 모습.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강아지 등에 피를 빨아먹는 벼룩을 가만히 두면 처음엔 괜찮아 보이지만 결국 죽게 될 수도 있어. 우리가 짓는 죄도 똑같단다. 작은 죄부터 떼어내지 않으면 우리를 죽이게 되지.”(주스띠나)

유년 시절 새소식반 성경공부를 접한 뒤 지금은 교사를 맡고 있는 주스띠나씨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무당을 찾아가 돈을 내고 소원을 빌던 동네 사람들이 지금은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변화의 시작점은 9년 전 시작된 어린이 성경 모임이었다. 그는 “골목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도박을 하고, 크고 작은 거짓말이 분란의 불씨가 되기 일쑤였는데 성경 모임에 온 아이들부터 태도가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건강한 생활 태도를 갖게 됐고, 처음엔 개신교 성경 모임을 경계하던 부모들도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을 열었다”고 덧붙였다.

5~6명 모이던 새소식반은 이제 50여명이 모이는 성경 모임으로 확장했다. 이 마을 전체 어린이 절반이 넘는 숫자다. 마을에 살던 무당들도 대부분 다른 마을로 떠났다.

영적 깊이를 더하는 성경 캠프와 헌신

성경 캠프에 참석한 어린이가 요한복음 교재를 들고 미소짓는 모습.

다음 날 딜리 서쪽 바투보우 마을의 메트로 초등학교에선 어린이전도협회 성경 캠프가 열렸다. 지역 내 새소식반에 참여하던 2~3개 마을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더 깊이 있게 성경 말씀을 배우고 퀴즈 풀기, 세족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련회 같은 시간이다.

나무줄기로 벽을 세워 만든 강당에서 김 선교사의 아내 유현복(55) 선교사가 탬버린을 들고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하자 축제가 열린 듯 공간 전체가 들썩였다. 어린이전도협회 동티모르 대표 엘리오 핀토 전도사가 요한복음을 주제로 메시지를 전할 땐 아이들이 어른 성도들 못지않게 몰입하며 성경 구절을 따라 읽었다.

핀토 전도사는 “마을 곳곳에서 진행되는 성경공부는 타종교 아이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된다”며 “예배를 종교적 행위를 넘어 바른 삶을 실천하는 다짐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많아지는데, 이는 동티모르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네마다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이면 유년부 전도사와 교회 형, 누나들이 끊임없이 찬양하며 뛰놀았던 1970~80년대 한국교회의 모습이 연상됐다.

“당시 한국교회는 큰 부흥기를 맞으며 전국 각지에 교사들이 많았지만, 가톨릭 국가인 동티모르에선 적은 수의 교사들이 지역 내 여러 마을을 돌며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찾아가죠.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며 새소식반 수업 장소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산악 지대를 오릅니다. 그래서 더 감격스럽죠.”(유 선교사)

세대에서 세대로… 복음적 자립 향한 꿈

김진수(뒷줄 오른쪽 첫 번째) 어린이전도협회 동티모르 선교사가 아내 유 선교사, 어린이전도협회 동티모르 대표 엘리오 핀토(뒷줄 가운데) 전도사, 아메나(뒷줄 왼쪽 두 번째) 헤라교회 목사, 교사들과 함께 교제를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이날 오후 찾은 헤라교회(아메나 목사)에선 지역 목회자와 어린이전도협회 교사들의 주간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매주 두세 차례 열리는 모임에선 각 마을 새소식반의 현황과 기도제목, 보완점 등이 총망라된다. 아메나 목사는 “동티모르 가톨릭 신자들은 성서를 ‘거룩한 책’이라 여기는 정서 때문에 성당에서만 가르치지만 개신교회는 교회 밖에서도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처음 어린이전도협회 선교사들이 찾아왔을 땐 수평 이동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헌신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이 보내주신 최고의 동역자로 함께하게 됐다”며 웃었다.

2010년부터 동티모르에서 어린이전도협회 사역을 펼쳐 온 김 선교사 부부에게 올해는 어느 해보다 큰 의미가 있다. 동티모르 새소식반 교사들과 이들을 훈련시키는 강사, 인도네시아 신학교로 유학을 떠나 예비 목회자로 성장하고 있는 전도사 그룹까지, 동티모르 현지인 스스로 신앙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지속해 나갈 힘을 키워내고 있음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소식반 성경 모임 때 아이들에게 나눠 줄 간식의 경우 과거엔 협회가 일체를 지원했다면 지금은 교사들이 교회와 마을에서 각종 농작물을 재배해 수입원을 만들고 이를 사역해 활용하기도 한다.

“다음세대가 영적으로 바로 세워지지 않은 사회엔 미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아이들이 하나님을 전하는 교사가 되고, 자기 아이들에게도 그 신앙이 전수되길 바란다는 고백이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어요. 이 땅에 희망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확인하는데 이만한 증거가 또 있을까요. 하하.”

동티모르=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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