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충남 아산 경찰수사연구원 법곤충감정실. 감정실 한쪽 냉장고에는 전국 변사 현장에서 보낸 파리 애벌레(구더기)를 담은 코니칼 튜브(샘플 용기)로 가득했다. 알에서 성충까지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구더기들은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서 몸을 쫙 편 다음 에탄올 농도 70~80%의 용액에 담가 밀봉한 상태였다. 곤충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이 같은 방식으로 보관한다.
오대건(38) 보건연구사는 구더기가 훼손되지 않게 꺼내 실체 현미경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현미경 속 구더기의 크기는 16㎜. 그는 “이 구더기는 구리금파리의 유충인데, 현장 온도가 22도라고 가정했을 때 이 크기까지 자라는 데 약 90시간이 걸린다”며 “사망으로부터 최소 4일 정도가 흘렀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곤충감정은 시신과 연관된 곤충의 정보를 통해 법적 증거를 확보하는 감정 기법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사망사건 등에서 활용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유 전 회장은 부패가 심하게 진행됐다. 연구진은 유류품 및 옷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구더기와 번데기 껍질을 모아 사망 시점을 추정했고, 결국 유 회장이 그해 6월 2일쯤 사망했다는 결론을 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고려대 법의학연구소와 부산 고신대 연구진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여기에 경찰이 지난 17일 법곤충감정실을 열면서 살인사건 해결에 법곤충감정 기법을 활용하는 일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곤충을 통해 밝힐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정보는 사망 추정 시점이다. 사망한 지 수개월이 지나면 시신의 부패 정도로만 사망 시점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9일 경북 울진군 야산에서 발견된 토막난 신원 미상의 여성 시신도 처음엔 범행 시점을 추정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돼 있었다. 고려대 법의학연구소 신상언 교수팀은 경찰이 채취한 구더기 3마리를 전달받아 해당 구더기가 치즈도둑파리과라는 걸 알아냈다. 이 구더기는 기온이 10도 이상일 때 산란이 가능한 종이다. 현장에선 집파리과 깜장파리속 구더기도 살아 있었다. 깜장파리속은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오는 암모니아가 발생할 때 주로 관찰되는데, 암모니아는 사망 이후 1년 정도까지 나온다. 이를 통해 경찰은 시신이 매장된 시기를 2014년 4~11월 사이로 특정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정보를 곤충으로 확인한 것이다.
오 연구사는 “파리는 아무리 차단된 곳이라도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 들어오고, 결코 접근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알을 낳아 결국 시신에 도달한다”며 “시신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곤충인 만큼 파리 구더기는 사망 시간을 추정할 때 중요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시신의 부패 정도에 따라 발견되는 곤충도 다르다. 시신에 가스가 차오를 때는 검정파리 구더기 등이 나타나지만 시간이 오래 경과해 말라붙게 되면 치즈도둑파리과가 발견되는 식이다. 습도가 낮고 건조하면 구더기 대신 딱정벌레 등 다른 곤충이 관찰된다.
법곤충감정실은 이달 중 개소 후 첫 감정 결과를 회신할 예정이다. 오 연구사는 “신속하고 정확한 감정으로 수사에 보탬이 되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아산=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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