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대담한 행보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2019년 11월 원일(54) 예술감독 취임 이후 경기도립국악단에서 이름을 바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공연마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 천편일률적인 국악관현악에서 벗어나 새롭고 현대적인 한국음악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하더니 게임 플랫폼을 활용한 공연이나 전자음악과 협업 등으로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제 뮤지컬 제작에까지 도전장을 냈다. 바로 오는 18~29일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금악’(禁樂)이다.
원 감독은 지난 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고 “솔직히 한국 전통음악 시장은 매우 협소하다. 대중성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려면 뮤지컬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공연시장의 70∼80%를 차지하는 뮤지컬은 전통음악부터 전자음악까지 모든 음악을 빨아들인다. 전통적 소재와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이 공연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악’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판치던 조선 순조 시절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당시 궁중의 무용과 음악을 담당한 장악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금지된 악보를 둘러싸고 천재 악공 성율과 왕세자, 핵심 권력자 김조순의 관계 속에 음악을 통해 깨어나는 인간의 욕망을 다뤘다. 원 감독은 작품의 아이디어를 냈을 뿐만 아니라 공동작곡자(성찬경 손다혜 한웅원)로서 연출까지 맡았다. 대본은 뮤지컬 ‘니진스키’의 김정민이 썼다.
원 감독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 ‘국악계의 이단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다양한 연주방식과 창작을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가 창단한 타악그룹 푸리(1993년)와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2003년)은 국악 기반의 창작음악 산실로서 민영치 장재효 정재일 한승석 이아람 박순아 박우재 등을 배출했다. 2001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활동한 그가 2012~201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뒤 학교에 사표를 내고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창작과 실험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전국에 적지 않은 국악관현악단이 있지만 현대성과 모던함이 부족해요. 저는 국악관현악단이 컨템포러리하게(현대적·동시대적으로) 나아가려면 다양한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기아트센터는 프리랜서를 선언한 그에게 경기도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직을 제안하며 그가 꿈꾸는 국악의 ‘새로운 미래’에 동참하고 나섰다. 그는 예술감독 부임 직후 단원들에게 ‘시나위’ 개념을 설명하고 이름을 바꾸자고 설득했다. 시나위는 원래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합주곡 양식의 음악을 가리키지만 원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창작정신이자 실천으로서 음악행위 전반’으로 정의한다. 연주자(단원)는 악보대로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행위자가 아니라 창조적 음악 행위를 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게 원 감독의 신념이다.
“시나위의 신명은 즉흥 영성 장단 등의 요소로 구성돼 있어요. 시나위의 철학이나 창작원리를 지칭하는 ‘신아위’(神我爲)는 창작 주체가 음악을 통해 신적 영역에 다다름을 뜻합니다. 인공지능(AI)이 예술 창작을 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유동적으로 호응하려면 오케스트라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지난해 3월 원 감독의 ‘신(新)시나위 혁명 선언’과 함께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당시 ‘신(新), 시나위’는 원 감독과 허윤정 박경소 등 한국음악계를 이끌어온 8명의 혁신적 뮤지션이 6개 팀을 구성해 공동 창작한 무대로 동시대를 관통하는 한국음악을 보여줬다. 지난해 11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를 활용한 ‘메타퍼포먼스: 미래극장’과 지난 4월 전자음악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시나위 일렉트로니카’는 완성도와 별개로 국악계에선 볼 수 없던 시도로 화제를 모았다.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렵죠. 디벨로핑 과정을 거쳐 레퍼토리로 만들어야죠. 단원들 역시 꾸준히 외부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며 창작역량을 강화하는 단계입니다. 적어도 2년의 준비기간은 필요하다고 봐요.”
원 감독 취임 이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행보를 볼 때 뮤지컬 ‘금악’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전통 음악의 현대적 활로 모색이라는 점에서 공연시장의 주류인 뮤지컬(음악극)을 무시하긴 어렵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성악단과 연희단으로 구성돼 총체적인 공연 양식인 음악극을 하기에 적합하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국립국악원이나 국립국악관현악단하고 명백하게 달라야 한다고 봐요. 전통이라는 명분에 집착하는 대신 현대화, 해체, 대중화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에서 창의적 시도를 할 겁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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