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연실(66·사진) 박사에게 북한은 마음의 고향과 같다. 실향민인 아버지가 고향 남포에 대해 늘 이야기했던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고향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였다. 어느덧 북한은 곽 박사의 인생 깊숙이 들어왔다. 자연스레 통일을 꿈꿨다. 그 꿈은 북한 연구로 이어졌다. 2009년 북한대학원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곧바로 이화여대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학업의 속도는 더뎠다.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지난 19일 만난 곽 박사는 “나이 들어 딸 또래 동료들과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통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신념으로 논문을 완성했다”면서 “북한을 위한 사역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 같아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곽 박사는 박사과정에 진학한 지 11년 만에 지난달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 제목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여성의 정체성 재구성’이다. 북한의 대도시에 거주했던 탈북여성 16명을 심층 인터뷰해 고난의 행군이 북한 여성들에게 끼친 자본주의 경제 관념을 연구했다.
1990년대 후반 극심한 식량난으로 많은 주민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은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를 불러왔다. 지도자와 당에 대한 신뢰는 현저히 떨어졌다. 집단주의는 개인주의로 빠르게 옮겨갔다. 경제관념도 마찬가지다.
“고난의 행군 전만 해도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에 있던 북한이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 그 중심에 당시 30대 여성들이 있었죠. 이들이 장마당을 일궜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이들을 인터뷰했고 북한 여성들의 정체성 변화를 엿봤습니다. 이들이 통일 후 북한을 이끌어 갈 주역이 될 것이라 봅니다.”
곽 박사의 학위수여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는 8월로 연기됐다. 곽 박사는 9월부터는 ‘분단 치유’를 위한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우리 가족도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모든 아픔은 치유하지 않으면 다음세대로 이어집니다.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화학적 융합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목회자의 아내이자 상담학 전공자로서 모든 지식을 동원해 분단 치유를 위한 활동에 힘쓰고 싶습니다. 그 출발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치유의 중심에 서야죠.”
이응삼(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 명예총무) 목사의 아내인 곽 박사는 북한학을 전공하기 전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했다. 서로의 마음에 남은 미움을 거둬내는 일이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북한이 미화된 부분도 있지만,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한 경험에 비춰보면 굉장히 현실적이었습니다. 우린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가 있는 한민족입니다. 서로 가까워지려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평생교육을 하는 게 꿈이다. “자생적 시장경제 속에 사는 북한 주민을 위한 맞춤 취업훈련과 자본주의 직업교육, 경제교육 등을 하려고 합니다. 남북 주민들의 마음까지 하나로 모으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