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변화 아닌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Է:2020-02-17 00:04
:2020-02-1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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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목사의 진정한 교회개혁 <6> ‘오직’의 분명함과 비타협성의 결과

혜림교회 장로수련회 참석자들이 지난해 8월 강원도 속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혜림교회 제공

종교와 사회가 분리된 지금의 교회와, 온 국민이 기독교인이요 기독교가 국교이던 중세 유럽의 교회를 동일 선상에 놓고 교회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교회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쳐 근대라는 새로운 장을 연 인류사적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표어가 말하듯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중심에는 신앙회복의 열망이 있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시대의 교회개혁과 16세기의 종교개혁은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구호로 집약됩니다.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주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 등과 같은 종교개혁의 주제들 모두가 성경을 통해서만 정확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종교개혁의 핵심주제는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이라는 말입니다. ‘오직’이라는 말에 담긴 그 분명함과 비타협성이 종교개혁의 기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이라는 분명한 지침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독일의 한 귀퉁이, 인구 2000명의 소도시인 비텐베르크에서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는 역사의 안개 같았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성물 숭배나 면죄부 구입 등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던 넓은 구원의 길을, ‘오직’의 이름으로 성경 한 길로 좁힌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그처럼 혼합주의 포용주의 공로주의 다원주의에 대항하는 신앙고백의 역사입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다원주의 사상에 대해 포용과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동의나 동감의 자세를 나타내는 걸 교회개혁으로 보는 것은 황당하고도 슬픈 일입니다. 종교개혁은 다양성이 아니라 ‘오직의 분명함’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1529년 독일 서남부의 슈파이어에서 제2차 제국회의(Imperial Diet)가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인정했던 3년 전의 제1차 제국회의와 달리 ‘오직 로마 가톨릭만이 합법적이고 유일한 신앙’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합니다. 그때 그곳에 모인 400여명 가운데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제후는 19명뿐이었지만, 그들은 그 법안 통과에 강렬하게 항의(protest)합니다. 그 후 가톨릭 교인들은 종교개혁 진영의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항의하는 사람들)라고 불렀습니다. 종교개혁은 그렇게 ‘오직’의 마음으로 항의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에 의해 밝아온 신앙의 세계였습니다.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외벽에 마르틴 루터가 이곳에서 수천편의 설교를 했음을 알려주는 비석이 부착돼 있는 모습. 혜림교회 제공


종교개혁 이후 다양한 신앙유형의 개혁자들이 등장합니다. 그중 이단적 사상을 띄지 않은 이들이 루터회 장로회 성공회 재세례파 등입니다.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성경으로 문제를 바라보려는 성경 존중의 관점에선 이견이 없었습니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부정하며 유아세례를 받은 이들은 반드시 재세례를 받아야 구원백성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몇 가지 문제를 야기했지만 그들이 유아세례를 금지한 것도 ‘성경에 유아세례에 대한 분명한 구절이 없다’는 그들 나름대로 성경을 존중한 결과였습니다. 그 분파 중 하나인 스위스형제단 같은 이들은 교회가 모든 면에서 초대교회를 따라야 한다며 찬송가를 부르거나 성도들이 세속적 직업을 갖거나 정치에 참여하는 일 모두를 반대했습니다. 성경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오류가 있고 많이 지나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중심에 성경이 있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한자로 개혁(改革)은 ‘새롭게 뜯어고침’을 뜻하지만 헬라어 개혁(디오르도시스)은 ‘흐트러진 것을 바로 잡는 것’ 즉 정정이나 회복을 뜻합니다. 종교개혁은 ‘뜯어고치는 변화’가 아니라 먼저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곳은 ‘오직 성경’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고 있는 조국교회의 영적 상황은 그런 면에서 다시 종교개혁 전야와 같습니다. 성경이 금하는 사상이나 행위들이 인권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교회개혁의 깃발을 흔들며 버젓이 교회 안팎에서 밀려들어 오기 때문입니다. 교황숭배나 면죄부 판매와 같은 온갖 비성경적인 주장 앞에서 담대히 ‘오직 성경’을 외치던 교회개혁자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조국의 교회에 그 밀려오는 물음들이 야유로 혹은 간절함으로 답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종교개혁자들이었던 루터와 칼뱅과 낙스라면 그 문제들과 사람들에 대해 ‘오직’ 어떻게 결정했을 것인가. 서구의 교회들도 인정했으니 한국교회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에게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영적 사대주의’가 아닌가.

김영우 목사


김영우 혜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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