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나라 전체가 바람 빠진 풍선 같다. 한적한 공연장과 카페, 식당을 보면 과거 그 높은 인구밀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다행히 우리는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비교하면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고 병의 징후도 경미한 편이다. 아마도 메르스가 남긴 교훈 덕분일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확진자 수를 기록한 바 있다. 중동지역에서 유행하던 이 전염병이, 유럽처럼 무슬림 이주민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지역적으로도 거리가 먼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이례적인 상황에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조차 적잖이 당황했다. 어쨌든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소리다.
전염병이 돌아도 아무도 죽지 않는 풍경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전염병을 기아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강력한 인류의 적으로 지목한 바 있다.
특히 상인들과 공직자, 순례자들이 들고 나는 도시는 인류 문명의 산실이자 병원균의 번식처였다.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출현한 흑사병은 5개월 만에 이 도시 인구의 3분의 2를 몰살시켰다. 베르나르도 다디와 로렌체티 형제, 마조 디 방코, 안드레아 피사노와 같은 예술가들이 당시 흑사병을 피하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전염병 중에서도 결핵과 매독은 예술가와 유독 인연이 깊었다. 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사망자 4분의 1이 결핵으로 숨졌는데 이 가운데에는 쇼팽과 카프카, 키츠, 발자크, 에밀리 브론테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에서도 나도향 김춘수 이상 등이 피해 가지 못했다. 유독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많이 걸렸던 탓인지, 결핵은 지적인 예술가의 병으로 미화됐다.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두 여주인공이 핏기 없는 얼굴로 기침을 하며 죽어가는 비련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움마저 느꼈다.
매독은 결핵보다 은밀하게 예술계에 침투했다. 대부분의 감염이 비윤리적인 매음굴 출입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고흐, 슈베르트, 슈만, 보들레르, 오스카 와일드, 모파상, 니체, 심지어 올해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베토벤조차 이 질병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 증상은 결핵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슈만은 정신착란증을 겪다가 라인강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요양원에서 식사를 거부하다 굶어죽었다. 베토벤의 청력 상실 또한 매독균에 의한 것이라 보는 학설이 많다. 그럼에도 매독은 천재의 질병으로 명성이 높았다. 니체를 모델로 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에는 매독과 천재적 재능을 주고받는 악마와의 거래가 묘사되어 있다.
물론 지금의 과학적 사고와 위생 기준에서 보면 허황된 이야기들이다. 게다가 이 병에 희생된 사람들은 이름 없는 서민계층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조작한 전염병의 스토리텔링 속에는 전염병 희생자들에 대한 포용의 미덕이 존재한다. 적어도 예술만큼은 인간에 대한 관용이 질병에 대한 혐오보다 중요한 세상을 꿈꿔왔던 것 같다. 지금 바이러스와 더불어 퍼지고 있는 저렴한 시노포비아(중국 공포증) 현상과 동양인 혐오와 비교하면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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