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를 만든 남기남(사진)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유족에 따르면 남 감독은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었으며 3개월 전에는 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서울 순천향대병원에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하다가 24일 오후 6시29분에 별세했다.
서라벌예술대(현 중앙대)를 졸업한 남 감독은 1972년 배우 김지미가 주연을 맡은 ‘내 딸아 울지마라’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70년대에는 ‘불타는 정무문’ ‘불타는 소림사’ 등 주로 B급 액션 영화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그는 적은 돈을 들여 영화를 빨리 찍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그의 이름을 빌려 “아까운 필름을 왜 남기남?”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다.
남 감독은 자투리 필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1년에 무려 영화 9편을 찍은 적도 있었다. 6일 만에 장편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100편이 넘는다.
남 감독의 전성기는 89년에 선보인 ‘영구와 땡칠이’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시작됐다. 개그맨 심형래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어린이 영화로는 전인미답의 성공을 거뒀다. 누적 관객이 270만명을 웃돌았다는 비공식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남 감독은 90년대 초반까지 ‘영구와 땡칠이 2-소림사 가다’ ‘영구와 땡칠이 4-홍콩 할매귀신’ 등을 만들며 영화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제작한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하면서 그는 서서히 잊혀졌다. ‘저질 감독’이라는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남 감독은 이런 지적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2011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에 고질이 어디 있고 저질이 어디 있나. 만드는 거 자체로 예술인 거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개그콘서트’(KBS2) 출연자를 앞세운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큘라’를 만들었다. 이후에도 ‘바리바리짱’ ‘동자 대소동’ 등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남 감독은 2009년 제47회 영화의 날 기념식에서 공로영화인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연단에 올라 “영화 인생 50년에 상을 받는 건 처음”이라며 “나는 지금도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찍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며느리 손자가 있다. 빈소는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6일 낮 12시.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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