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할 때 활동명 대신 본명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게 큰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이름을 바꿔서 의지를 보여준다 한들, 그라운드 위에서 플레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햇수로 8년, 이제는 꽤 무르익은 뮤지컬 배우다. 화려한 가수 시절을 뒤로하고 열정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뛰어든 테이(본명 김호경·36) 얘기다. 지난달 중순 1990년대 인기 드라마를 극화한 ‘여명의 눈동자’ 공연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6월 30일 드림아트센터)에 합류한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만났다.
“두 작품의 표현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여명의 눈동자’는 인물의 내면을 절제해서 보여줘야 하는데 ‘루드윅’은 감정을 발산하고 터뜨리는 부분이 많죠. 배우로서는 굉장히 신나는 작업이에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감사해요.”
‘루드윅’은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삶을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뛰어난 음악성을 조명하기보다, 사랑이나 존재의 의미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했던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비춘다. 극 중 장년에 접어든 베토벤을 연기하게 된 테이는 서범석 김주호 이주광과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테이는 “위인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난해 초연을 보고 그런 고민을 내려놨다”며 “위대한 음악가로서의 서사였으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인간적 갈등을 다뤘기에 비교적 쉽게 풀렸다. 내 인생과의 접점을 찾아 해석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장 촉망받던 시기에 이명이 오면서 음악을 버리고 싶어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저 역시 음악을 그만해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자신의 내면을 다 드러내지 못하는 폐쇄적 성향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요.”
테이는 2004년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1집 타이틀곡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데 이어 발표하는 곡마다 연달아 히트했다. 승승장구하는 사이, 가슴속에는 남모를 고민이 움텄다. 갑작스러운 성공이 어느새 ‘기대에 어긋나선 안 된다’는 부담감으로 뒤바뀐 것이다.
5집 앨범을 준비하던 무렵 슬럼프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치면서 3~4년간 감정적으로 닫힌 삶을 살았다. 그를 일으킨 건 음악이었다. “다시 음악을 만들다 보니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나는 음악을 안 하고 살 수 없구나. 제게 음악은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연기를 처음 접한 건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SBS·2009)를 통해서였다. 상대 배우들과의 호흡에서 무대 위의 희열과는 또 다른 짜릿함을 느꼈다. 이후 3년간 정식으로 연기를 배웠고, 그러다 뮤지컬에 눈을 떴다. 음악과 연기가 접목된 뮤지컬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2012)을 시작으로 ‘명성황후’(2015) ‘잭 더 리퍼’(2016)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8) 등을 거쳤다. 전부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다. “저는 오디션 보는 거 좋아해요. 티켓파워나 홍보를 위한 게 아니라 배우로서의 쓰임을 인정받은 것이라 마음이 편해요.”
테이는 “가수 테이라는 명성에 기대기보다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 제대로 쓰이고 싶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주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8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