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팝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57)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나타났다. 무라카미는 루이비통과 협업해 한때 길거리에서 3초에 한 번꼴로 볼 수 있다고 해 ‘3초백’ ‘지영이백’으로 불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명품 가방을 선보인 그 작가다.
그는 이날 롯데월드타워 내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한 대만 출신 미국 작가 제임스 진(42)의 개인전 ‘끝없는 여정’을 축하하러 왔다. 진은 20대 초반 미국 만화산업을 대표하는 DC 코믹스에 취직해 만화책 ‘페이블즈(Fables)’ 커버 작업을 시작하면서 상업미술계에서 명성을 쌓은 작가다. 2009년부터는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신호탄으로 순수예술 세계에 입문했다. 뉴욕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 전시에 참여했다. 무라카미는 특히 그를 격찬한 미술계의 대선배다.
“제임스 진은 내러티브 세계의 예술가다. 장차 예술계의 중심에 설 작가다.”
애정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라카미는 직접 한국으로 날아온 것이다. 전시장에 나타난 무라카미를 알아본 관람객들이 함께 셀카를 찍자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그가 말했다. “진이랑 먼저 찍고 저는 다음에….”
진은 2015년 다카시가 운영하는 도쿄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전시하기 몇 년 전 무라카미가 일본 피규어 제조업체 관계자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진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진은 한국 전시를 위해 가로 10m 길이의 초대형 회화 6점을 제작했다. 동아시아 미술의 모태가 되는 오방색을 주제로 특유의 초현실적인 감수성을 펼쳐 보이는 작품들이다. ‘레드’는 지옥도를 그리지만 어린 악마들이 통상적인 지옥도와 다르게 유쾌하게 표현돼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블루’는 순수한 세계를 의미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생명, 탄생을 의미하는 꽃들을 ‘하강’이라는 죽음의 의미와 결합시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블랙’은 흑발의 님프들이 멱을 감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화이트’와 ‘옐로’는 가족을 지키는 용맹한 호랑이 이미지를 각각 회화와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했다.
작가는 순수예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성공가도를 걷고 있다. 2007∼2018년 세 번에 걸쳐 프라다와 협업을 했다. 그가 제작한 슬리퍼와 스카프, 가방 등의 드로잉, 만화책 ‘페이블즈’ 표지, ‘마더!’ 등 할리우드 대작 영화 3편의 포스터도 볼 수 있다. 7월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 ‘사자’(주연 박서준 안성기)의 포스터도 그가 제작했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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