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비로소, 보기 좋으시도록

Է:2019-04-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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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는 어디까지 혼자 해야 하는 걸까요?” 한 학생이 수업 후 조용히 다가와 내게 물었다. 어려운 집 장녀로 태어나 자라면서 자주 들은 말이 ‘세상살이 결국 혼자 해내는 것’이었다는 집안 배경을 덧붙여 전한다. 노비여도 좋으니 차라리 ‘출생이 운명을 결정하는’ 전근대(pre-modern) 사회에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오늘의 청춘들이다.

자기를 증명하고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홀로 달리는 개인의 고독과 피로가 언제쯤 끝날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근현대 사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면서 그 후기 상태인 오늘날 ‘1인 문화’가 도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설명을 마친 뒤였다. 결국 근현대 사회가 이상화한 인간 유형은 “탈성적 전문가 개인”이라고 했다.

‘기회의 균등’이라는 근대적 합의는 늦게나마 여성에게도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탈성) 전문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지만, 한정된 자리(사무용책상)를 놓고 경쟁하는 후보가 급증한 후기-근대 사회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개인’이어야 생존이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이다. ‘1인 문화’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과도한 인간관계를 잠시나마 피하기 위한 ‘혼자만의 여흥’일지 몰라도, 결국 현재의 사회적 작동방식을 제도적 수정 없이 계속 밀고 나가다 보면 우린 계속 혼자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마도, 고독사?” 내 입에서 나온 첫 마디에 질문한 학생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설마 내가 가르친 학생 개인을 향한 저주였을까. 제도적 대안이 절실하다는 말을 막 시작하려는 것이었음에도 학생이 너무 겁에 질린 듯하여 얼른 결론부의 말을 먼저 꺼냈다. “만약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제도를 새로이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그건 학생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후기근대인인 우리들 모두의 운명이 되겠죠.” 비로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그 학생은, 제도적 변혁에 참여하는 지식인이 되기 위해 ‘살아남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는, 또 하루만큼의 열심을 내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너무나 애틋했다.

교수는 영어로 ‘프로페서’라고 한다. 프로페스(profess)할 것이 있는 사람이요, 그래서 강단에서 ‘주장하는 사람’이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자로서 나는 그렇게 주장해왔다.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삶은 동물의 법칙이라고.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지으시지 않았노라고. 우리는 ‘서로를 돕는 상응하는 파트너’(Ezer Kenegdo, 창 2:18)로서 지음 받았노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각자의 재능은 나만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상호 도움을 주고받으라고 주신 선물이라고. 상호성을 잃은 사회는 망한 사회라고. 개인으로 살아남아야 하도록 만든 제도는 잘못 기획된 것이라고. 혼자 군림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지 못하다’고 하셨노라고.

초짜 선생일 때에는 열변을 토하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제법 성취감마저 느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눈을 반짝이며 내 주장을 마음에 담고 가슴에 새긴 학생들이 ‘대안’으로 살아가는 소식을 전해주면서부터 내 마음이 복잡해졌다. 언제나 마지막이 치열한 법, 혼자 뛰어야 살아남는 무한 경쟁의 제도적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데, 대안이 되겠다면서 충분히 혼자 살아남을 법한 재능을 가진 졸업생이 ‘더불어 사는 삶’의 실험을 위해 제도 바깥으로 성큼 발걸음을 떼었다는 소식은, 기쁨도 크지만 나를 겁나게 했다. 한 졸업생은 자신의 전문성과 재능으로 시작한 작은 경제공동체 이름을 ‘비로소’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기에 눈물이 났다. “세상에 지지 않을게요.” 내가 키운 나의 아이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소망스럽고 감격스런 말임에도, 나는 이 사순절 기간에 마리아처럼 엎드려 기도한다. 그리고 조금 더 버티기로 결심한다. 내 아이들이 소망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넘어질 때, 좌절할 때, 잠시 쉬었다가 가고 힘을 회복하는 삶의 자리 한켠쯤은 마련해주어야 하겠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비로소 좋은’ 우리로 만들어져가기 위해 어른의 몫을 감당해야 하겠기에.

백소영(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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