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관저 앞. 차량 창문마다 노란 리본이 매달렸다. ‘700’이라는 숫자가 적힌 스티커를 붙인 시민들은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를 응원했다. 총을 든 경비원들이 오가는 가운데, 길바닥엔 노란 의자가 놓였다. 의자 위에는 히브리어로 “죽은 인질들은 말이 없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쪽에서는 테이프 위에 숫자 700과 노란 리본을 그리는 한 노인이 행인들에게 테이프를 건네며 작은 응원을 주고받았다.
가자전쟁 발발 700일째 되는 이날 예루살렘 한복판은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은 700일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가자지구에는 인질 48명이 남아 있다. 생존자는 2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교환하는 포괄적 합의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행정은 기술 관료가 맡는 독립적 국가 행정기구를 세우자는 제안도 내놨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정치적 꼼수”라고 일축했고,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역시 “인질 전원 석방과 비무장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하마스를 격퇴할 것”이라며 가자시티 점령 의사를 재차 밝혔다.
정부와 무장정파의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루살렘 거리의 시민들 표정에는 고단함이 묻어났다. 안전을 위해 동행한 이헌재(26) 히브리대 한인총학생회장은 “이스라엘 국민은 이미 지쳐 있다”며 “긴 전쟁과 반복된 협상 결렬로 피로감이 깊이 스며 있다”고 설명했다.
인질 가족의 아픔은 더 깊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에스텔(61)과 오웬 보크슈타프(66) 부부는 가자 전쟁 발발 후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2023년 10월 7일 이들 부부는 하마스로부터 첫 영상을 받았다. 첫째 아들과 며느리가 인질로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며느리는 첫 번째 인질 석방 때 구출됐지만,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듬해 6월 이스라엘 군 작전 과정에서 하마스로부터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에스텔씨는 “아들이 죽은 뒤로는 분노밖에 나지 않는다”며 “군 작전이 인질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닌 채 이뤄지면,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오웬씨는 “우리가 거리에 서 있는 건 시위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인질이 돌아왔을 때 ‘누군가 우리를 기다려줬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종교와 상관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의 고통을 공감해야 한다”며 “남은 인질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릴락 프리르란드(27)씨는 지난해 3월부터 시위에 참여해 왔다. 그는 “700일 동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인질들은 영웅적인 인물”이라며 “정부는 무조건 이들을 무사히 데려와야 한다. 죽어서 돌아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빛과 사랑이 퍼져나가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덧붙였다.
골란고원에서 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온 닐(35)씨는 인질 가족의 지인을 대신해 팻말을 들었다. 그는 “직접적으로 아는 분은 아니지만, 가족과 지인의 사정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함께하고 있다”며 “인질 문제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닐씨는 외신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에 책임을 묻는 시위를 하는 시민들까지 핍박받아선 안 된다”면서 “인질 가족들에게는 매일이 700일이고, 그 고통을 덜기 위해 나왔다”고 전했다.
예루살렘=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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