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기다려 받은 행운의 편지” 조혈모세포 기증의 기적

최근 방송인 김나영씨가 조혈모세포 기증을 실천한 사실을 알리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앞서 지난 3월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이남호씨도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사례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관심이 적극적인 기증 실천으로까진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최근 김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10년을 기다려 받은 행운의 편지’라는 브이로그를 올리며 조혈모세포 채혈과 검사 과정을 공개했다. 그는 “10여 년 전 우연히 기증 등록을 했는데, 최근 집으로 조혈모세포은행에서 내 유전자와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조혈모세포 기증은 평생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라서 더욱 뜻깊다”며 “힘든 시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응원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 그 응원과 기쁨을 다른 이에게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평생 단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라고 말한 건 조혈모세포 조직 적합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부모·자식은 약 5%, 형제자매도 25% 남짓에 불과하며 타인의 경우 수천·수만 명 중 단 한 명만 일치할 정도로 희박하다.

적합 판정을 받아도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김대영 분당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조혈모세포 기증은 잘못된 정보와 두려움 때문에 실제 동의율이 60%에 그친다”며 “나머지 40%는 막상 연락이 오면 ‘성급했다’거나 ‘고민해 보겠다’고 하다가 끝내 기증을 포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들에게도 애초에 기증자가 없는 것과, 기증자가 있음에도 거부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게 조혈모세포 기증 과정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세 가지를 물었다.

첫 번째는 ‘두려움’이다. 좋은 일이라 생각해 등록은 하지만 막상 연락을 받으면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어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전신마취 후 엉덩이 뼈에 바늘을 꽂아 골수를 채취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100% 말초혈액을 통해 기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말초혈액 채취는 헌혈과 유사하며, 골수 채취와 결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기증자에게 더 편한 방법을 택하기 위해 현재 모든 병원에서 말초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기증 희망자 등록 과정에서 검사비용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각 병원 내 혈액은행을 통해 매년 1만5000명의 기증 희망자에게 조직적합성 항원(HLA) 검사비(1인당 14만원)를 지원하지만, 지원받지 못한 신청자는 다음 해로 미뤄야 한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1만6829명이 기증을 신청했으나 매년 약 1829명은 예산 부족으로 검사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조혈모세포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6994명으로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기까지 평균 6년이 걸린다. 환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기다림이다.

김 교수는 “국가 재정이 소모되면서 다른 사람의 기증 기회까지 막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한정된 예산 때문에 기증에 동의할 수 있는 이들의 가능성마저 차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는 기증자 본인은 동의했더라도 부모나 배우자, 연인 등 가족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김 교수는 “주변의 잘못된 인식이 기증을 가로막기도 한다”며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직접 경험했던 이남호씨도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용기를 주세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증자를 찾지 못해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각자 자기 주변 지인 10명의 기증 등록을 목표로 한다.

고1 때부터 13년간 135번 헌혈을 해온 이남호씨는 2022년 매형이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조혈모세포를 이식을 받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는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마음으로 같은 해 기증자로 등록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는 60대 남성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조혈모세포은행에서 연락 받았을 당시 그도 “막상 연락이 오니 조금 두려웠었다”고 고백했다.

“예전처럼 골반에서 채취하는 게 아니라 일반 헌혈과 비슷한 방식이며, 부작용도 거의 없다는 설명을 듣고 마음을 정했어요. 우리 곁을 떠난 매형이 떠올랐고, 생명을 나누는 감사와 이식을 받게 될 환자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까지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죠. 하나님께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증을 후 그는 조혈모세포 기증 인식 개선 활동에 나섰다. ‘용기를 주세요’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까지 지인 5명이 기증자로 등록했지만, 일부 지인은 헌혈의 집을 찾았다가 예산이 소진돼 내년에 다시 오라는 안내를 받는 등 10명이 넘는 이들이 등록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씨는 “조혈모세포 기증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혈액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일”이라며 “이번 김나영씨의 기증을 계기로 인식이 개선돼, 기증자를 찾지 못해 소중한 이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한국교회와 많은 이들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등록은 가까운 헌혈의 집을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조직적합성항원(HLA) 검사를 위해 3~5㎖를 채혈하며, 약 한 달 뒤 검사 결과가 통보되면 기증 희망자로 등록된다. 등록은 만 18세 이상 만 40세 이하만 가능하고, 기증자의 건강과 안전, 이식 성공률 등을 고려해 만 55세가 되면 자동으로 말소된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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