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싸고 많이 파는 브랜드’라는 인식에서 ‘비싸고 좋은 차’를 파는 브랜드로 전환하고 있다. 올해 1분기 해외 평균 판매 단가(ASP)는 국내보다 최대 1800만원 가까이 높았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전기차 등 고가 라인업을 확대하면서 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미국발 관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가운데 ASP 상승은 오히려 역발상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올 1분기 국내 ASP는 5457만원, 해외는 7323만원으로 1866만원 차이가 났다. 기아는 각각 4156만원, 5086만원으로 930만원 격차다. 승용차와 레저용차(RV) 판매 가격을 더해 단순 평균한 수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현대차·기아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싸게 판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2020년 현대차의 해외 ASP는 4203만원 수준이었으나 5년 새 3000만원 넘게 상승했다. 기아도 같은 기간 3607만원에서 5086만원으로 단가를 끌어올렸다. 다만 당시에도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ASP는 각각 4180만원, 3390만원으로 해외보다 낮아 ‘해외가 더 싸다’는 인식 자체가 부정확했었다.
물가와 환율 변화가 ASP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연간 평균 원·달러 환율은 2020년 1179.90원에서 올해 1419.06원으로 20.3% 상승했다. 환율이 해외 판매 가격 인상의 주된 배경인 셈이다.
그러나 단순한 외부 요인만으로 ASP 상승을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차·기아의 ‘제값 받기’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차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비롯해 팰리세이드·싼타페 등 SUV와 아이오닉5 등 전기차 중심으로 고가 라인업을 확장했다. 기아도 스포티지·쏘렌토·카니발·EV6·EV9 등 고가 모델 중심으로 라인업을 재편했다.
또 무리한 현금 할인은 줄이고, 미국 시장에선 무이자 할부·저금리 금융상품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수요를 유지했다.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ASP를 방어하는 데 효과를 봤다. 예컨대 중형 SUV 투싼 하이브리드 가격은 한국에서 3356만원부터 시작하나 미국에서는 4630만원(3만3465달러), 영국은 6662만원(3만6220파운드)부터 판매된다.
완성차 업계는 앞으로 ASP 상승이 관세 전쟁 시대의 핵심 대응 수단이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은 오는 7일(현지시간)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한다. 단순히 물량을 늘리기보다 가격 정책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관세 리스크를 줄이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는 과거엔 ‘저렴하고 무난한 차’로 인식됐으나 이제는 품질·디자인·기술 측면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로 평가받는다”며 “미국의 관세 압박이 본격화할수록 ASP를 높여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전략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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