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11시. 서울 연신내역 로데오거리 입구. 호프집과 치킨집, 노래방과 카페가 즐비한 이 거리에 업무로 지친 직장인들과 술 한 잔에 취기가 올라온 청년들이 북적이고 있을 때 갑자기 수상한 무리가 나타났다.
20명 가까이 되는 청년들이 삼삼오오 등장했다. 손에는 헛개나무차 한 박스,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돋보였다.
“이제 3조로 나눠서 주점과 상점들 사이 골목골목으로 들어가요.” 한 청년이 외치자 이들은 각자 헛개차를 들고 로데오거리 구석구석으로 흩어져갔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헛개차 드릴게요.”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이 인사 소리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하나둘 멈춰 선다. 청년들의 손에 들린 건 클럽 전단지가 아닌 시원한 헛개차였다. 이들은 서울 양광교회(심은수 목사) 청년들로 ‘헛개차 전도’라는 사명을 띠고 연신내 거리를 누비고 있다.
이 독특한 사역은 2년 전 양광교회가 선포한 ‘불광동을 양광동으로, 불광동을 힙광동으로’라는 비전에서 시작됐다. 양광(陽光)은 햇빛을 의미한다. 교회는 ‘맑고 밝고 따스한 양광교회’라는 정체성을 추구한다.
양광교회 청년부 담당 한현승 목사는 1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한강 다리에서 자살방지 캠페인을 벌인 교회들 소식을 접하고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연신내 거리에서 금요일 밤마다 술자리를 갖는 청년들을 보며 ‘술 주(酒)님’이 아니라 ‘진짜 주(主)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헛개차 전도는 일 년에 2~3차례 진행된다. 한 목사는 “지난 6월부터 한 달 넘게 진행했으며 오는 9~10월 중에 다시 나갈 예정”이라며 “가을에는 플로깅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한 청년들이 전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유치원 교사 김주현(27)씨는 “헛개차 받으시고 갑자기 ‘할렐루야!’ 외치는 분, ‘내게 강 같은 평화’ 흥얼거리는 분들이 있었다”며 “담배 피우시던 분이 ‘어머, 교회에서 주신 거구나’라며 급하게 담배 끄시던 모습도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백경훈(26)씨는 “과거에 교회 다녔던 것 같은 분들이 찬양을 불러주실 때가 기억에 남는다”며 “다음에 복음을 들을 때는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 목사도 “생각보다 이걸 좋게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다”며 “‘양광교회, 아는 교회다’ ‘좋은 일 하시네요’ ‘교회가 이렇게 전도해야지’ 같은 반응을 들었다”고 전했다.
사역에 참여한 청년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김씨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리 전도가 조심스러웠는데 이번 사역을 통해 전도란 꼭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작은 친절과 사랑의 실천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백씨도 “전도를 하려면 마음의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핑계를 댔는데,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도 전도를 해봐야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목사는 “단순히 사람을 교회로 끌어오는 것보다 하나님께 받은 감동을 지역에 전하고 싶다”며 “이 사역이 마중물이 되어 은평구 안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청년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함께 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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