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피카소’로 불렸던 고(故) 하반영 화백(1918~2015)의 작품을 연중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예향 전주에 생겼다.
8일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영화의 거리 인근에 ‘하반영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미술관은 하 화백이 평생에 걸쳐 그린 서양화와 한국화, 서예, 도자기 등 300여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 ‘풍경’ 등 300여점 전시 … 전국 최대 규모
예쁜 골목길을 지나 미술관에 들어서면 하 화백의 숨결과 손길이 느껴지는 다양한 작품이 빼곡히 걸려 있다.
먼저 하 화백의 연표에 이어 대표작 ‘비인도 바닷가’와 ‘금강산’ ‘빛’ 등이 내방객들을 맞는다. 또 ‘생성’ ‘봄’ ‘밝아온다’ ‘어머니의 장생’ ‘복숭아’ 등이 보인다. 더불어 구상, 비구상, 추상, 서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쪽에 있는 병풍도 눈길을 끈다. 앞엔 그가 79세에 가을 풍경을 그린 ‘추경’, 뒤엔 85세에 쓴 서예 작품이다.
미술관은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말년까지의 변천 과정을 조망하며 예술가의 길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하 화백은 서양화는 물론 풍경화, 추상화, 한국화, 구상화, 인물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과감한 장르 탈피와 해체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면 그의 뛰어난 예술성과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황성숙 미술관장은 “이 곳은 하 화백의 예술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교류의 장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황 관장은 이어 “관람객들이 깊은 감동을 얻고 많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하는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K컬처 시대에 한국 미술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석동 미술관 이사장은 “앞으로 유족들과 협의해 하반영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라며 “하 화백이 생전에 예술 청소년들을 적극 후원한 것처럼 우리도 응원하겠다. 청년 공모전 등을 통해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회 등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 화백의 이름을 단 미술관은 군산과 경북 김천에 이어 세 번째다. 그러나 이 곳이 최대 규모이자 개인이 하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미술관 한쪽에는 카페도 마련돼 조용한 분위기에서 음료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퀸의 ‘머큐리’와 길거리 예술가 ‘뱅크시’ 특별전
개관 기념으로 2층에선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작품 사진전’과 전설적인 록밴드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 사진전’이다.
21세기 현대 예술계 신비한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뱅크시의 작품 90여점이 살아 움직인다. 영국을 중심으로 길거리 벽에 그래피티를 그려온 그의 작품은 은유와 위트로 가득 차고 때론 전쟁과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
머큐리 사진전은 그의 전성기 시절 공연 장면과 미공개 사생활 사진 등 30여점이 선보인다. 마이크를 들고 열창하는 그의 모습에 생생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특별전은 5월30일까지 이어진다. 이들 전시는 입장료(성인 1만원, 청소년 8000원)를 내야 관람이 가능하다.


◇ 평생 다양한 예술 장르 펼친 ‘르네상스인’
하 화백은 서양화뿐 아니라 한국화와 서예, 도예, 수채화, 수묵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평생 창작 활동을 했다. 생전 ‘한국의 피카소’ ‘르네상스인’이란 평가를 받았다.
1918년 경북 김천에서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군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7세 때 수묵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3세 때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광복후 유럽과 미국 등에서 활동했다.
1979년 400년 전통의 프랑스 국전인 ‘르 살롱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1987년엔 미국 미술평론가협회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국적인 미를 화폭에 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또 어떠한 구속과 속박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공부하며 동서양의 융합을 시도했다. 2006년에는 아시아 미술계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일본 ‘니카텐’(이과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평생 개인전 50여회, 해외초대전 10여회, 국제전 150여회를 열었다.
하가로씨 등 하 화백의 자녀 5명도 아버지를 이어 미술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90세 이후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하 화백
하 화백은 2015년 전주에서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2012년 암 수술 후에도 하루 3∼4시간씩 창작활동에 매진했다. 99세가 되는 2017년 ‘백수전’을 열 계획이었으나 두 해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특히 하 화백은 후학 양성과 이웃사랑 실천에도 앞장섰다. 전시 수익금을 복지재단에 기부하고 군산시와 김천시에는 수백 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많은 사람이 미술품을 공유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중국 초청으로 ‘하반영 90세 베이징전’을 열어 수익금을 쓰촨성 지진 피해자와 장애인들을 위해 기부했다.
그의 그림은 국내외 여러 곳에 소장돼 있다. 박정희·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잇따라 그의 작품을 구입해 청와대 등에 전시했다. 또 정주영 현대 회장과 삼성 홍라희 여사 등이 그의 작품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미술관, 프랑스 국립박물관 등도 수십 점을 소장하고 있다.
전주=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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