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삶을 가장 비참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이상 지속하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은 극도의 어려움 가운데 놓여있지만, 전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서 잊히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이 시작된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 사역 중인 한국인 선교사 세 가정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꿈꾸며 ‘뉴호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이는 방대식(58) 선교사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선교사, 씨드(SEED) 국제선교회 미국 부대표 등을 거쳐 2018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사역했다. 프로젝트로 잠시 방한한 방 선교사를 최근 서울 구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전쟁이 터진 뒤 여느 현지인과 다를 바 없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 전쟁 소식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전쟁 직전에 잠시 우크라이나를 나왔는데 아내 박형엽 선교사와 뉴스를 들으며 트라우마를 겪을 수밖에 없었죠. 현지 신학교에 주차한 차를 러시아 군대에 의해 잃어버렸는데 극적으로 찾은 경험도 했어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피란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죠.”
방 선교사는 전쟁 발발 두 달 뒤부터 우크라이나와 접경 지역인 폴란드 루블린에서 피란민 사역을 했다. 루블린에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위한 난민 센터가 있었는데 한없이 열악한 환경이었다. 큰 체육관에 간이침대를 두고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한 채 겨우 누워있을 수 있는 정도였다. 피란민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봤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환경임에도 열 살 된 남자 어린이가 스마트폰을 통해 독학으로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한국전쟁이 떠올랐다고 한다.
“전쟁으로 국토가 90% 이상 파괴된 우리나라가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서게 된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었죠. 교육이 나라를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공부할 길을 터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육센터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됐죠.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학교에 입학하도록 했어요.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면 꼭 교육 사역을 하고 싶었어요.”
방 선교사는 교육뿐 아니라 전쟁으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상담 사역, 의료 서비스가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그래서 세 가지 사역을 피란민과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난민 재활 선교 센터의 설립을 꿈꿨다. 이름은 ‘뉴호프 센터’다.
방 선교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절반 이상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방 선교사는 “군대에 나간 군인이 다쳐서 제대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들은 일부러 집에 가는 것을 피한다”며 “트라우마로 인해 ‘쿵’ 소리만 나도 폭력적으로 변하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을 받길 원치 않아서다. 전쟁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할 여력이 없는 이들이 정서적으로 회복할 길이 요원해 상담 사역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방 선교사의 비전에 전석근·곽정숙 선교사, 김현호·주경옥 선교사 가정이 동역하기로 했다. 방 선교사는 우즈베키스탄 에버그린 인터내셔널학교에서 일한 경력 등을 살려 센터 운영을 할 예정이다. 김현우 선교사는 대체 의학을 공부해 한방 관련 활동을 할 수 있으며 그의 아내 주경옥 선교사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국립대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석근 선교사도 선교단체 PGM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 받아 다양한 사역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한국어 교육 전공자나 영어 강사 등 달란트 있는 성도들의 동역을 요청하고 있다.
방 선교사는 우크라이나 입국을 앞두고 가족들의 만류 속에서 다시금 우크라이나 선교에 대한 사명을 다짐하고 있다. 순교의 각오까지 한 상태다. 그러면서 “떨어지는 폭탄으로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도 했다”며 “만약 살려주시면 아직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일이 있기에 살려주신 것이라 믿고 최선을 다해 사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에 우크라이나를 위한 관심과 기도도 요청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고 난민 선교센터를 통해 하나님 사랑이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는 기회가 되길 기도해달라”고 전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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