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의 매력은 배우에게 작품을 오롯이 끌고가는 느낌을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작품을 시작하는 조명이 켜지기 직전 달리기 시합 출발선에 선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배우 김강우(47)가 연극 ‘붉은 낙엽’(~3월 1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으로 9년 만에 무대에 섰다. 영화와 드라마에 주력해온 김강우의 연극 출연은 2016년 ‘햄릿-더 플레이’에 이어 두 번째다. 최근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만난 김강우는 “110분간 공연 중 한 번의 퇴장도 없어서 체력 소모가 크지만, 관객과 호흡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고 피력했다.
연극 ‘붉은 낙엽’은 미국 추리소설 대가 토머스 쿡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했다. 평범한 가장인 에릭 무어의 중학생 아들이 동네 8살 여아의 실종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아들을 비롯해 점차 자신의 형 등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게 되는 에릭 무어의 심리적 변화와 그에 따른 가족 관계의 파국이 펼쳐진다. 2021년 초연 당시 여러 연극상을 받은 이 작품의 올해 재연에서 김강우는 배우 박완규, 지현준과 함께 에릭 무어 역을 번갈아 연기 중이다.

김강우는 “연극은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각색했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습하면서 방대한 대사량 외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연기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연습 과정 내내 산봉우리를 하나씩 넘는 느낌이었다”면서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장면이 쉴 새 없이 전환되고 사건과 심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의심이 의심을 낳는다는 게 핵심 주제이기 때문에 표현 방식을 다르게 해서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관객들이 극 안으로 들어와 제 감정을 함께 느끼시면 작품의 재미를 더 크게 느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평소 자기 관리에 엄격한 노력파 배우로 알려져 있다. “타고난 배우라기보다 많은 연습과 공부를 해야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다. 그는 “연습이 덜 되고 자신감이 없으면 무대에 설 수 없다. 또한,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넣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면 하프 마라톤을 뛴 것처럼 기진맥진해진다”면서 “‘붉은 낙엽’은 배우의 입장에서 잔인한 작품이지만 그만큼 만족감도 크다. 마지막 공연까지 욕심부리지 말고 실수 없이 해내는 것이 목표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연기에 세밀함을 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형제를 둔 그가 이번 작품에서 특히 예민하게 느끼는 부분은 ‘아버지의 정’이다. 그가 연기한 에릭 무어가 아들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사랑하면서도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 아들에 대한 에릭 무어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이번 작품을 가족, 특히 사춘기 아이가 있는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처제인 배우 한혜진은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3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출연하고 있다. 두 사람이 출연 중인 작품 모두 라이브러리컴퍼니 제작에 이준우 연출이다. 김강우는 “제작사와 연출자까지 같은 작품을 비슷한 시기에 무대에 올리는 우연은 또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2년 전 ‘바닷마을 다이어리’ 초연할 때 봤었고, 이번에 처제가 ‘붉은 낙엽’을 보러 왔었다. 공연 본 뒤 ‘힘들겠다’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라고 말했었다”고 전했다.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와 활력을 얻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연극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나왔기 때문에 연극을 친숙하게 느낀다. 사실 ‘햄릿-더 플레이’ 이후 다시 연극 출연을 고려할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는 바람에 미뤄져 아쉽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2~3년에 한 번은 연극을 하고 싶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은 캐릭터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역할도 해보고 싶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오베라는 남자’가 무대화되면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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