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립운동가’에 호주 선교사 3명 선정

입력 : 2024-02-29 15:46/수정 : 2024-02-29 15:48
왼쪽부터 마거릿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데이지 호킹 선교사. 국가보훈부 제공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만세운동을 도운 호주 선교사 3명이 선정됐다.

국가보훈부는 29일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과 3·1운동을 함께 한 마거릿 샌더먼 데이비스(1887~1963·2022년 애족장), 이사벨라 멘지스(1856~1935·2022년 건국포장), 데이지 호킹(1888~1971·2022년 건국포장) 선교사를 ‘2024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1910년 10월 20일 호주장로회 여선교사회연합회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내한했다. 호주장로회에서 운영하던 부산진일신여학교 교무주임 교장 등을 역임했다. 1919년 3월 11일 학생들의 만세 시위에 참여해 학생 보호에 앞장서다 체포된 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1940년까지 일신여학교 교장과 교육선교사 활동을 이어오다 ‘신사참배를 강요받는 학교를 경영하지 않겠다’는 호주 장로회의 방침에 따라 호주로 귀환했다.

멘지스 선교사는 1891년 9월 호주장로회 여전도회연합회에서 메리 퍼셋, 진 페리 선교사 등과 함께 파송됐다. 의료 선교사 하디의 집에 거주하며 한국어를 배운 뒤 부산진 좌천동을 거점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1893년 이 지역 최초의 고아원인 미오라고아원을 설립 운영하고 1895년 부산·경남지역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인 일신여학교를 설립 및 초대 교장이 됐다. 1919년 3월 기숙사 사감을 맡으며 기숙사 학생들이 태극기를 만들 때 깃대를 제공해줬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만든 태극기 등을 보관해줬다.

호킹 선교사는 1916년 3월 내한해 어린이를 위한 성경학교와 주일학교를 운영하다 1918년부터 일신여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위를 권유하며 함께 행진했고, 시위 당시 학생들을 보호했다. 이를 계기로 교장 데이비스와 함께 체포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일제는 데이비스와 함께 그를 여학생들이 벌인 만세운동의 지휘자로 간주했다. 1941년 영일 관계 악화 및 영국영사관의 권고로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귀환했다.

보훈부는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한 만세 시위는 부산·경남 지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며 “시위의 계획과 지휘를 비롯한 전반을 여교사와 여학생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성 독립운동 분야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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