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근대연극의 지도자’ 또는 ‘일본 현대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극작가 기시다 구니오(1890~1954)의 희곡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출판됐다. 1925년과 1926년에 각각 발표된 ‘종이풍선’과 ‘옥상정원’으로, 일본 근대연극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기시다 구니오는 한국에서도 연극 애호가들에게 꽤 친숙한 이름이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 극작가의 상당수가 젊은 시절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 수상 경력이 있으며 그 수상작이 무대화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기시다나 그의 작품에 대한 소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부에 이동형 연극단 운영을 제안하고 직접 이끌었던 전력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가부키와 신파가 주를 이루던 1920년대 일본 연극계에서 권선징악을 벗어나 인간 심리와 생활을 다룬 최초의 희곡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기시다는 부친의 뜻에 따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지만 군대 생활에 대한 염증으로 휴직한 뒤 28세에 도쿄대학 불문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프랑스 유학을 떠나 연극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1924년 희곡 ‘낡은 장난감’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당시 그가 발표한 희곡들은 말의 뉘앙스를 중시했던 프랑스풍 심리극의 독특한 분위기로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새로운 조류를 몰고 온 신진 극작가로 주목받던 그는 1929년 오사나이 가오루의 죽음과 함께 문 닫은 일본 근대 연극의 산실 츠키지 소극장 해산 이후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일본의 유서깊은 극단 문학좌의 창단 주역이자 ‘비극희극’ 등의 연극 잡지를 펴내며 다양한 극작가를 소개하고 배출했다. 이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동조한 행보를 비판받지만 일본 근대 연극의 기틀을 다진 공로를 기념해 후배 연극인들이 신진 극작가에게 최고 영예인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제정했다.
이번에 출간된 작품 2편은 모두 부부의 일상을 그린 것으로 ‘스케치풍 연극’으로 불린다. 100년 전 희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극적 사건이나 갈등이 두드러지지 않고 평범한 대화만으로 극을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종이풍선’은 결혼 1년 차를 맞은 한 부부의 일요일 오후 풍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시껄렁한 일상 대화로 이루어져 발표 당시 일본 비평가들로부터 경박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는 줄거리다운 줄거리가 없는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무대로 올려놓고 경쾌한 대사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변화를 묘사한다.
‘옥상 정원’ 역시 성공한 사업가와 실패한 예술가인 두 친구와 그 부인들이 고급 백화점 옥상 정원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가 주요 내용이다. 고층 빌딩에서 벌어진 일본 최초의 투신자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일본 사회상을 반영한 허례허식, 허영과 질투, 욕심, 자격지심이 드러난다.
두 작품은 ‘연극UNIT 世輪프로듀스’의 제작으로 오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대학로의 극장 동국에서 70분짜리 옴니버스 연극으로 총 8회에 걸쳐 공연된다. 두 작품을 연출하는 임세륜은 이번 희곡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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