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양정웅-배우 유인촌, ‘파우스트’로 협업 이어간다

Է:2023-03-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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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4월 29일 LG아트센터… 2015·2016년 연극 ‘페리클레스’에 이어 두 번째

오는 31일 개막하는 ‘파우스트’는 LG아트센터가 역삼동에서 마곡동으로 이전한 이후 처음 제작하는 연극이다. 양정웅(오른쪽)이 연출하는 이번 작품에서 배우 유인촌(왼쪽)은 늙은 파우스트를 맡았다. 이한형 기자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희곡 ‘파우스트’는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괴테가 1773년 시작해 1831년 완성했으니, 무려 58년이 걸린 셈이다. 1부가 1808년, 2부가 괴테 사후 몇 달 뒤인 1832년 출간됐다.

‘파우스트’의 모델은 15~16세기 마술사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 그는 대학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했지만, 점성술과 연금술에 빠져 예언자를 자처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갑작스러운 죽음 탓에 악마가 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괴테 이외에 여러 작가가 이 전설을 소재로 작품을 썼는데, 대부분 전설처럼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었다가 파멸된다. 하지만 괴테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계약을 토대로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으로 양분되는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한편 기존의 권선징악에서 벗어나 인간 구원을 이야기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수많은 연출가에게는 늘 도전하고 싶은 고전이다. 그동안 ‘코리올라누스’ ‘페리클레스’ ‘페르귄트’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 고전을 감각적인 무대로 선보여온 연출가 양정웅이 이번에 ‘파우스트’에 도전한다. 3월 31일~4월 29일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공연되는 ‘파우스트’는 LG아트센터가 역삼동에서 마곡동으로 이전한 이후 처음으로 제작하는 연극이기도 하다. 양정웅(55)과 이번 작품에서 늙은 파우스트를 맡은 배우 유인촌(71)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사람은 2015·2016년 예술의전당의 ‘페리클레스’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준 바 있다.

양정웅 “원작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하고 싶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초상화. 괴테는 60년 가까이 ‘파우스트’를 썼다.

“‘파우스트’는 200년 된 고전이지만 그 힘이 대단합니다.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이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감동을 줍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파우스트’를 읽었지만, 연륜이 쌓이지 않으면 감히 연출에 나설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치 버킷리스트처럼 60살 넘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책장에 꽂아놨는데, 이번에 예상보다 빠르게 하게 됐어요. 그리고 ‘파우스트’를 연출한다면 당연히 유인촌 선생님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양정웅)

‘파우스트’의 내용은 크게 프롤로그와 1·2부로 구성돼 있다. 프롤로그에는 파우스트의 선함을 놓고 내기하는 신과 악마 메피스토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어 1부는 노학자 파우스트가 앎의 허망함에 자살하려다 메피스토와의 거래로 젊어진 뒤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을 그렸다. 파우스트와 사랑을 나눈 순진한 처녀 그레첸이 메피스토의 농간으로 아이와 어머니를 죽여 사형을 당하는 등 비극으로 끝난다. 2부는 세상으로 나아간 파우스트가 그리스 신화 속 미녀 헬레네와 가정을 꾸리지만 아들의 죽음 등으로 파경에 이른 뒤 메피스토의 유혹을 뿌리치고 땅을 개간해 백성에게 땅을 나누어주려는 모습을 담았다. 막판에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천사가 내려와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것으로 끝난다. 양정웅은 이번에 프롤로그와 1부만 다룬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연출가가 자신만의 해석을 가지고 ‘파우스트’를 올렸는데요. 저는 작가의 메신저가 되어 작품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충실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원작이 너무 방대한 만큼 이번엔 1부만 공연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2부를 올린 뒤 다시 1·2부를 함께 올리고 싶어요.”(양정웅)

연극 ‘파우스트’에서 늙은 파우스트로 출연하는 유인촌은 그동안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무대에 섰다. ‘파우스트’와도 인연이 있는 편이다. 1997년 직접 제작한 연극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역을 맡았으며 2012년 구노의 오페라를 결합한 낭독 공연 ‘파우스트-괴테와 구노의 만남’에서 파우스트 겸 메피스토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다만 본격적인 파우스트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인촌 “고 이어령 선생을 모델로 파우스트 연기”

2015년 예술의전당에서 양정웅이 연출한 ‘페리클레스’에 출연한 유인촌. 예술의전당.

“파우스트는 온갖 학문에 통달한 최고의 지성인만큼 나이 들어 연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그 깊이를 담아야 하니까요. 덧붙여 내가 신앙이 좀 더 깊었다면 파우스트에 더 깊이 파고들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 못해 아쉽지만 노력하고 있어요. 참고로 이번 역할을 연기하면서 제가 존경했던 고(故) 이어령 선생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도 ‘시대의 지성’이라고 할 만큼 온갖 지식을 가지고 계셨죠.”(유인촌)

양정웅이 연출하는 ‘파우스트’에는 유인촌 외에 주요 캐스트로는 박해수(메피스토), 박은석(젊은 파우스트), 원진아(그레첸) 등이 나온다. 원진아는 첫 연극 출연이지만 박해수와 박은석은 드라마나 영화에 앞서 대학로에서 활발하게 활약한 바 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수리남’ 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박해수(42)는 2018년 두산아트센터의 ‘낫심’ 이후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2월 제작발표회에서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상 수상자(2012년)여서 이번에 유인촌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남다르다는 소회를 드러낸 바 있다. 유인촌신인상은 국내 주요 연극상 중 하나인 동아연극상의 신인상을 유인촌이 후원해 2007년부터 이 명칭으로 시상하고 있다.

“연출가에 따라 늙은 파우스트와 젊은 파우스트를 한 배우가 모두 연기하거나 두 배우로 나누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레첸과의 사랑 장면은 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게 어울린다고 봐요. 이번에 젊은 배우들과 연습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는데, 상대역인 박해수는 정말 잘하더군요. 내가 25년 전에 메피스토 역을 연기할 때는 무대에서 놀듯 가볍게 풀어냈었는데, 박해수는 무섭게 몰아붙입니다.”(유인촌)
“박해수를 비롯해 젊은 배우들이 유인촌 선생님의 리딩을 듣고는 바로 녹음하더라고요. 선생님의 딕션이 워낙 뛰어나잖아요. ‘파우스트’의 문학적인 대사를 정말 잘 전달하세요.”(양정웅)

LED패널 등 사용한 초현실주의적인 무대 구현

LG아트센터가 역삼동 시절 마지막으로 선보인 ‘코리올라누스’의 한 장면. 양정웅이 연출한 이 작품의 타이틀롤은 유인촌의 아들인 남윤호가 맡았다. LG아트센터

양정웅이 연출하는 고전은 원전에 충실하되 현대적인 언어와 세련된 미장센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페리클레스’에서는 60t 분량의 모래를 무대 위로 옮겨왔고, ‘코리올라누스’는 흑백 느와르 영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 바 있다. 이번 작품의 경우 LED패널과 확장현실(XR) 효과를 무대에 구현할 예정이다. 그는 “이 작품에선 빛과 어둠이 중요하다. 괴테가 강조한 4대 원소와 정령들을 통해 인간 세계와 메피스토의 세계를 표현할 예정”이라면서 “러시아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블라디미르 쿠쉬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유인촌은 “우리나라에서 소극장 연극을 잘 만드는 연출가는 적지 않다. 하지만 스펙타클한 비주얼이 필수적인 대극장 연극은 양정웅보다 잘 만드는 연출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칭찬했다.

양정웅과 유인촌의 인연은 ‘파우스트’ 이후에도 계속될 것 같다. “선생님, 나중에 ‘리어왕’과 ‘템페스트’도 함께 하셔야죠?”라는 양정웅의 말에 유인촌이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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