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줄래?” 미성년자 노린 ‘김근식 수법’ 여전히 판친다

지난 2006년 인천과 경기도 고양, 파주 등에서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복역한 김근식(54)이 오는 17일 출소한다. 김근식이 조만간 출소한다는 소식에 미성년자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8일 대법원 판결문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통해 최근 벌어진 미성년자 유인(미수 포함) 사례들을 살펴봤다. 특히 미성년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유인하는 고전적 수법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의 심리를 노린 것으로, 과거 김근식도 자주 사용했던 수법이다. 김근식은 지난 2006년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9세 초등학생에게 “물건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며 자신의 승합차에 태워 범행을 저질렀다. 출소한 지 16일 만에 벌인 일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수법은 지난해 3월에도 벌어졌다. 피고인 A는 경기도 오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11세 여자 초등학생에게 “무거운 짐을 들어달라”고 부탁해 피해자를 아파트 지하 1층으로 유인했다. 피고인 A가 범행 전 미리 봐둔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지하 1층에 이르자 A는 갑자기 돌변했다. 그는 “가방 안에 커터칼이 있다”며 피해자를 위협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A는 이날 여러 차례 범행을 저질렀다. 10세 여자 초등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본 뒤 따라 들어가 남성과 여성이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3초 동안 보여주는가 하면, 12세 여자 초등학생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탄 뒤에는 떨어진 물건을 줍는 척하며 고개를 숙여 휴대전화로 피해자의 치마 속을 촬영했다.

재판부는 성폭력특별법상 13세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짐을 들어달라며 범행 전 미리 봐둔 인적이 드문 장소로 피해자를 유인한 뒤 추행하여 그 범행수법도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먹을 것을 사주겠다’ 등 호의를 베푸는 수법도 여전했다. 피고인 B는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의 도로에서 10세 여자 초등학생 둘에게 다가가 “너희들 어디 가니?”라고 말을 걸었다. 피해자들이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고 하자 “오빠가 자장면 사줄게. 같이 먹자”며 피해자들을 따라나섰다. 피해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식당에 들어가자 B는 식당에서 나오는 피해자들을 기다렸다가 재차 “자장면 사줄게. 먹고 가라” “필요한 거 사줄 테니 산책가자”고 말하며 유인했다. 미성년자 유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B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는 도시의 ‘아파트’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와 인적이 드문 ‘지하주차장’이 모여있는 ‘아파트’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 장소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피고인 C는 지난 2020년 6월 청주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8세 여자 초등학생이 혼자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함께 놀자”며 놀이터를 배회하던 C는 “더우니깐 시원한 곳에 가자”며 피해자를 지하주차장 안으로 유인해 추행했다. 경찰 수사 결과 C는 범행 직후 피해자에게 사과와 함께 1000원을 건네며“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고 말한 사실도 밝혀졌다.

지적장애 3급인 피고인 C는 재판 과정에서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피고인의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이 비정상적이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성폭력특렵법상 13세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C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3년간 취업제한도 명했다.

피고인 D는 지난해 5월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 근처를 3시간 동안 배회했다. 여자 초등학생들이 보일 때마다 쫓아가 말을 걸었다. 11세 여자 초등학생 셋에게 접근해 “저녁까지 시간이 남는데 같이 노실 수 있으세요?”라고 말했으나 거절당했다. ‘같이 놀자’는 말이 입력된 휴대전화 화면을 초등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되기도 했다.

미성년자 유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D는 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고 보고 보호관찰을 명했다. D는 경찰 조사에서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거절할 것이지만 한 명이라도 같이 놀자는 제안을 승낙할 것 같아 여학생들을 뒤쫓아가 말을 걸었다”고 진술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유인 범죄는 성별도 가리지 않았다. 지난 2020년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11세 남자 초등학생 세 명은 경기도 안산의 주택가에서 낯선 어른과 마주쳤다. 이 남성은 “커피를 주겠으니 안으로 들어오라”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피해자들이 망설이자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CCTV도 있으니 괜찮다”며 안심시켰다. 벽에 걸려있는 기동순찰대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을 ‘경찰관’이라고 속이기까지 했다.

이에 속은 피해자들의 이 남성의 집에 따라 들어가자 그는 갑자기 돌변했다. 경찰에서 사용하는 호신술이라며 과도를 집어 던지며 피해자들을 위협했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음란 동영상을 재생해 피해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미성년자 유인 및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E는 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근식이 조만간 출소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거 김근식이 범행을 저질렀던 인천과 경기도 고양, 파주 일대의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누가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하더라도 절대 응하지 말라고 교육시키고 있다”며 “이렇게 교육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아이 혼자서 놀이터도 못 보내겠다” “직접 하원시키고 싶은데 직장에 다니고 있어 안타깝다” 등의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김근식 출소에 대한 소식을 공유하고 있다. 경찰은 김근식의 출소 후 주거지가 확정되면 ‘특별전단팀’을 구성해 대응할 방침이다. 앞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근식이 출소 후 어디에서 거주할지 아직 확정이 안 됐다”며 “주거지가 확정되면 해당 경찰서에 특별전담팀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법무부 특별보호관찰관과 유기적 관계를 구축하고 지방자치단체와도 협의해 CCTV 등 범죄 예방 시설을 보강할 계획”이라며 “대상자 주변을 집중적으로 순찰하면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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