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까지 불어왔습니다.”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형사35-1부(부장판사 이종민) 심리로 열린 ‘사법농단 의혹’ 공판에서 내놓은 작심 발언이다. 이날 공판은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전원 바뀐 뒤 2개월 만에 열렸다. 재판장은 공판 갱신절차를 진행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발언 기회를 부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 가지만 말씀 드리겠다. 우리 피고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예단에 관한 것”이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앞선 검찰 수사를 ‘광풍’에 비유하면서 “(수사를) 마치고 난 뒤 잔해만 남은 상태에서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 관찰을 방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법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특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수사 책임자였던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날선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얼마 전 검찰 고위 간부 한 분이 모종의 혐의로 수사를 받자 수사심의위원회를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면서 ‘수사상황이 시시각각 유출되는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던 한 검사장 측 입장을 언급했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가 벌어지던 지난해 7월 한 검사장 측이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면서 밝혔던 내용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늘 이 사건이야말로 ‘수사과정이 실시간 중계방송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쉬지 않고 수사상황이 보도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광풍이 다 할퀴고 지나간 자국을 보면, 이게 왜 이렇게 됐나 살피는 상황에서도 과거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 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지난달 25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일부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 판단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3차례 공범으로 적시했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한 혐의,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취소하도록 유도한 혐의, 내부 비판세력이던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을 와해하려 한 혐의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공모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헌재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이규진에게 ‘아이고, 헌법 관련 업무를 맡는다던데 열심히 잘 해보시죠’ 정도로 덕담 차원의 당부를 한 것”이라고 했다. 위헌제청 관련 혐의는 “사후적으로 알게 됐을 뿐”이라고 반박했고, 연구회 와해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던 사안”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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