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청계천 빈민의 성자(30): 교계 정보를 빼내려는 미 CIA

Է:2020-08-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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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맞선 한 성자의 눈물: 한국 교회는 왜 권력이 됐는가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2010년 서울 푸르메재단을 방문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부부. 1960~80년대는 남한의 굶주리는 어린이를, 지금은 북한 굶주린 어린이를 돕고 있다.

나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회유를 물리친 후 귀국을 했다. 그들의 회유란 일본 등 어디서 일하던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라는 취지였다.

귀국 후 11년간이나 기다려준 아내 요리코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다음 날이 주일이었으므로 신혼부부인 우리는 주일예배를 드리러 요코하마 노게산교회에 갔다.

그런데 장의자 뒷좌석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백인이었다. “누구신지?”하고 의아한 눈길을 보내자 그가 “당신의 친구다. 기억 못 하겠는가?”라고 했다.

초면인데도 구면임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재차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잘 모르겠다”고 하자 “네 친구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유학 생활 중 스쳤던 얼굴인데 내가 모르는 건가 싶기도 했다. 기관원의 전형적인 접근 방법이었다. 그때는 그들의 그런 방식의 말과 행동을 잘 몰랐다.

그 후로 ‘보이지 않는 손’의 감시가 계속됐다. 부정기적으로 편지가 오곤 했는데 이상한 건 발신인의 주소가 없었다. 편지 내용은 일상적 문구였으나 뭔가 복선이 깔린 듯 찜찜함을 남겼다.

어느 날 도착한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요코하마역 북쪽 출구로 나가 구두를 닦으면서 기다리라.’
더럭 무슨 음모에 휘말리는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으므로 겁을 낸다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요리코, 미국인 친구와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겠어요. 요코하마역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다녀올게요.”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괜한 일로 걱정을 많이 할까 봐 걱정이 앞서서였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요코하마역 북측 광장. 구두를 닦고 있으니 옆에 앉아 같이 구두를 닦던 사람이 슬며시 내게 말을 건넸다.

“노무라 씨, 앞에 보이는 커피숍으로 가 계시겠습니까?”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휙 하니 가 버렸다. 커피숍으로 갔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이 다가와 실크호텔이라는 명칭을 말해 주며 몇 호실로 오라 하고 사라졌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고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그 호텔 방으로 들어서니 한 사람이 나타나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날씨, 그 무렵에 신문에 난 기사 정도의 화제를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다만 이 사람들이 어머니의 활동에 의심을 품고 나를 감시하는 것인가 하고 짐작했을 뿐이다.

그들의 그러한 이상한 ‘지령’은 그 뒤로도 3회나 반복됐다. 어머니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돼 나가곤 했지만 불쾌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말을 잘 들게 해 세포로 활용하고 싶어 그 같이 반복했다고 본다.

그들은 나를 회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진정한 친구가 되면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름으로, 미국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명서를 발급하겠다.”

냉전으로 인한 광기의 시대. 나는 개미지옥에 갇혀 허우적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교묘한 회유는 내가 도쿄에서 50km 정도 떨어진 가나가와현 하야마라는 어촌에서 목회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하야먀는 메이지 시대 천황가와 왕실의 별장이 있던 해변 마을로 풍광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들은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자 노골적인 협박을 해댔다.

“사가미만(灣)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잔잔한 바다에 노무라 씨의 시체가 떠 있는 것을 본다면 부인이 어떻게 될까요?”
그 요원의 얘기에 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 참 뒤에서나 알았지만, 그들은 내가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처음엔 반미적 태도가 있다고 보고 감시했던 것이고, 감시했던 것과 달리 어촌에서 목회 등을 하며 조용히 보내자 일본 교계에 불고 있는 반미적 기독교 사회운동을 막기 위한 프락치로 심으려 했다.

특히 1960년대 들어 베트남전이 격화되면서 기독교계와 반미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일본 내 사회주의 운동의 격화는 미국과 일본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따라서 나 같은 미국 유학파 출신 교계 인사를 통해 일본 기독교계 내 정보를 얻고자 했다.

그 무렵 나와 접촉을 시도했던 미 육군 정보관계자 프라이스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나를 회유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미국은 베트콩 등을 섬멸하기 위해 B-29 공습을 감행했는데 그 전투기의 이착륙지가 도쿄 인근 다치카와와 요코다 미군 공군기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미국의 극동 및 동아시아 정책 실현을 위한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다.

그런데 일본 지식인과 대학생, 크리스천 등이 반전 평화운동을 주창하면서 연일 다치카와·요코다 미군공군기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주로 일본 기독교계가 앞장서 펼쳤는데 바로 그 속에 들어가 정보를 빼낼 스파이가 필요했다.

어머니에게 위해가 될까 싶어 그들은 만나야 했다. 실크호텔 만남 외에도 도쿄의 유명한 제국호텔, 도쿄역의 스테이션호텔에서도 각각 1회를 만났다. 또 고탄다역 영화관, 어덜트호텔 등에서도 3회가량 만났다. 그러나 완강히 저항하자 그 뒤로는 부르지 않았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은 2020년 8월 국가 권장 ‘세종 도서’로 선정됐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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