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똑같이 나가는데…한 번 더 얘기해드릴까요?”
2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사전 인터뷰 자리. 허문회(48)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전날 우천으로 연기된 더블헤더 1차전 라인업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적극적인 답변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시작 직전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대답을 이어갔다. 앞에 놓인 테이블에 기댄 채 상체를 최대한 기자들 쪽으로 빼고 모든 질문을 귀담아 듣는 모습이었다. 전날 사과까지 이어진 ‘무성의·불통’ 논란을 의식한 변화 같았다.
지난 며칠간 롯데를 둘러싼 가장 큰 화제는 단연 허 감독의 인터뷰였다. 지난 23일 KIA전을 앞두고 열린 사전 인터뷰에서 허 감독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일관했다. 인터뷰 내내 고개를 숙인채 거의 모든 질문에 단답형 대답을 했다. KIA전 연패를 끊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냐는 질문에 “KIA 뿐 아니라 모든 팀을 상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대답을, 라인업을 묻는 질문엔 “홍보팀이 알려줄 것”이란 답을 내놨다. 이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약 3분 만에 인터뷰장을 나갔다. 롯데 관계자가 “원래 그 정도까지 하신 적은 없는데 저희도 당황스러웠다”고 상기할 정도였다.
이에 롯데 구단 내부의 불화설이 점화되기도 했다. 마침 이석환 롯데 대표이사가 이날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성민규(38) 단장과 허 감독이 선수 운용을 두고 갈등하고 있단 최근의 소문을 어느 정도까진 인정한 상태였다. 여기에 대표이사로선 이례적으로 팀 성적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까지 했다. 최근 원정 9연전 중 17~19일 3연속 끝내기 패배를 당한 게 아쉬웠고, 경기를 져놓고 웃는 모습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고, 승률 5할 미만으로 떨어진다면 현장과 프런트 모두가 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을 책임지는 허 감독으로선 구단의 수장이 외부에 직접 부정적인 코멘트를 내놓은 게 다소 불만이었을 터다. 하지만 대처는 분명 아쉬웠다. 내부적인 갈등이 있든 개인적인 일이 있든 거기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외부에 내색하는 게 ‘프로팀’ 감독으로서 적절한 처사였는지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24일 “감정조절을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사과를 남긴 허 감독은 이를 인식한 듯 확실히 변했다. “6패요?…아 홈 6연전이요? 기아한테 6패했잖아요. 자꾸 6패라고만 들리는 거에요. 사람이 참 희한하게.” 비가 내리는데 홈 6연전이라 다행이라는 말을 잘못 듣곤 웃으며 사뭇 유쾌한 답변도 했다. 선수들이 더블헤더를 힘들어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엔 “저도 18이닝 앉아있는 게 힘들었는데, 뛰는 선수들은 더 힘들 것”이라며 진심어린 대답을 하기도 했다.
“감독은 사실 언젠가 떠날 사람이죠. 선수들은 야구를 즐겁게 오래할 사람, 구단의 자산이구요. 캠프 가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날 허 감독은 지난 23일 KIA전 5이닝 69구만 던지고 강판, 말소된 서준원 등 젊은 선수들에 대한 관리 철학을 다시 한 번 덤덤하게 밝혔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 이닝 안배를 해준단 숭고한 철학을 이뤄나갈 주체는 허 감독이다. ‘떠난’ 사람이 돼선 아무리 좋은 철학도 무용지물이 된다.
롯데는 23일 사직 KIA전에서 승리하고 5할 승률(21승 21패)을 회복해 공동 6위에 올랐다. 25일 더블헤더 1차전은 취소된 상황. 변화를 꾀한 허 감독이 아직 긴 여정이 남은 시즌 중 구단 내 갈등을 이겨내고 롯데의 반등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산=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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