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8년 겨울, 경기도 성남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관료의 삶을 원했던 부모의 뜻을 따라 성균관을 마치고 관직에 올랐는데, 일제의 을사늑약(1905)과 정미7조약(1907)을 겪으면서 의병에 길에 들어선다. 기울어가는 국운 속 한평생을 불을 뿜는 총구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사내. 그는 1921년 일본 경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낯선 타지 중국에서 순국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한독립단에서 활동했던 이명하 선생.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인물이지만, 지금껏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광복 74주년을 앞둔 이달 8일부터 이명하 선생처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33인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웹툰이 시민들을 만난다. 성남문화재단이 온라인 만화 플랫폼 다음 웹툰에서 선보이는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김구 선생, 할아버지로 친근하게 불렸으면”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추진됐다.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올바른 역사인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요즘 더 뜻깊은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
재단 내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 추진단(이하 웹툰 추진단)은 지난해 12월부터 역사학자 등의 자문을 수차례 구해 김구·김원봉·신채호·윤봉길·이봉창·홍범도 등 33인의 독립 운동가를 선정했다. 성남 출신 독립 운동가이면서 그간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이명하와 남상목·한백봉 등을 포함하는 한편 가네코 후미코·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김마리아 등 여성 운동가들까지 폭넓게 조명한다.

언제든 손쉽게 만화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프로젝트의 큰 매력이다. 인기 만화 플랫폼 중 하나인 다음 웹툰을 통해 공개된다. 독립 운동가 1인당 24회로 연재되는데, 8일과 다음 달 5일 각각 16인의 이야기를 3화 분량씩 먼저 선보이고 이후 매주 1화 분량이 업로드된다.
현재 국가보훈처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의병과 독립 운동가만 해도 1만5000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뜨거웠던 우리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게 추진단의 설명이다. 이도헌 웹툰 추진단장은 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독립 운동가들은 영웅이지만,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기도 하다”며 “문화예술의 끌차 역할을 하고 있는 만화가들이 그린 이 콘텐츠가 김구 선생 같은 독립 운동가분들을 할아버지, 아저씨라고 친숙하게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33색으로 되살아나는 독립 운동가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프로젝트에 참여한 화려한 작가진이다. 엄정한 콘텐츠 자문을 거쳐 40여명의 만화가·스토리 작가들이 추려졌는데, 거장부터 중견, 신진 작가까지를 아우른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화로 만나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만화가 허영만과 김진이 있다. 허영만 화백은 ‘각시탈’(1974), ‘날아라 슈퍼보드’(1989), ‘타짜’(1999), ‘식객’(2003) 등 40년간 수많은 히트작을 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 드라마 ‘이몽’(MBC)에서도 조명된 적 있는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의 일대기를 그린다. 다음 달 중 공개될 계획인데, 이 작품만은 아직 연재 플랫폼이 확정되지 않았다.
드라마 ‘주몽’(MBC·2006)의 원작자이자 국내 온라인 게임의 효시 격인 ‘바람의 나라’ 만화를 23년째 연재 중인 김진 작가는 다음 달 5일 최근 영화 ‘봉오동 전투’로 잘 알려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소재로 한 만화 ‘풀’의 김금숙(김알렉산드라)을 비롯해 권가야(김상옥), 김광성(신채호), 김성희(김마리아), 김수박(이봉창), 백성민(김구), 천명기(이육사), 전세훈(나운규) 등 유수의 작가들이 다채로운 색깔로 독립 운동가의 생애를 풀어낸다.
젊은 층이 즐겨보는 웹툰이라는 특성을 십분 살린 스토리 구성도 참신하다. 엄격한 역사적 고증 위에 현대적 감성을 묻혀내 세대 외연을 넓혔다. 가령 김익상 의사를 그린 웹툰 ‘독립을 드림’의 경우 취업 준비생 청년 김익상이 우연히 1921년으로 타임슬립을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작품들 저마다 이런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듬뿍 담겨있다.

지난 4월에는 작가진, 역사학자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를 방문하는 등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염기남 웹툰 추진단 사무국장은 “작가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고 많이 말한다”며 “작가 모두 평소보다 훨씬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했다. 이들 개개인의 개성을 듬뿍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웹툰 추진단의 최종 목표는 매해 33인씩 3년에 걸쳐 총 100인의 독립 운동가를 조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만화 1편은 남북 합작으로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 단장은 “안중근 의사처럼 남과 북이 같이 기리는 분을 함께 되새겨보자는 취지”라며 “위인 100분의 삶이 시민들에게 독립운동을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지도가 되고, 자긍심을 다질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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