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사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31일 서울 양천구 빗물저류배수시설 사고는 기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인재(人災)로 확인되고 있다. 빗물저류배수시설을 책임지는 서울 양천구와 현대건설은 이날 오전 많은 비가 올 수 있다는 기상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원이 지하 터널에 들어가는 것을 방치했다. 폭우로 위험 상황이 전달된 뒤에도 현장 관계자는 수문(水門)을 닫는 데 필요한 비밀번호를 몰라 시간을 허비했다.
소방 당국과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26분 양천구 목동의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 지하 터널 수로에서 현대건설 협력업체 직원 구모(65)씨가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협력업체의 다른 20대 미얀마 국적 직원과 현대건설 직원 안모(30)씨는 실종된 상태다.
소방 당국은 잠수부 10명을 포함한 소방대원 133명과 고무보트 2대를 투입해 밤새 실종자를 수색했다. 저녁부터는 기존 펌프 외에 소방용 수중펌프를 추가 설치하고 터널 내 물 빼는 작업을 시작했다.
구씨와 미얀마인 직원은 전선 수거 방법을 파악하기 위해 오전 7시10분쯤 지하 40m 아래 터널로 들어갔다. 이들이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고, 30분 뒤 터널 하부에 위치한 수문 2곳이 자동으로 열렸다. 안씨는 두 직원과 무전 연락이 끊기자 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터널에 들어갔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하고 앞서 진입한 직원들과 함께 터널 안에 고립됐다.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은 양천구와 강서구 일대 지역의 침수 피해 예방을 위해 지어졌는데 갑자기 내린 폭우로 수문 자동 개폐 시스템이 작동해 약 6만t의 물이 터널에 순식간에 차오른 것이다.

현대건설은 오전 7시38분쯤 양천구에서 수문 개방 예정 통보를 받았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양천구의 연락을 받고 제어실에 도착한 현대건설 관계자는 수문 개방 시스템의 패스워드조차 모르고 있었다. 현대건설 현장관리소장은 “문과 수동 개폐 장치에 패스워드가 걸려 있어 (수문 개방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며 “패스워드를 알아낸 후 입력했지만 수문이 이미 열린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수문 개방) 제어 권한이 없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양천구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6월 초부터 배수시설 시스템 작동 방법을 교육하면서 수차례 시스템을 제어해 왔다”며 “수문 개폐 제어 권한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은 이날 브리핑 장소에서 수문 개폐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많은 비가 예보됐음에도 직원들이 터널에 들어가도록 놔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상청은 오전 5시쯤 서울 전 지역에 시간당 20㎜ 넘는 비가 내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예보를 발표했다. 앞서 발주처인 서울시도시기반시설본부에서 시범가동 기간이라는 이유로 수문 개방 기준을 다소 낮춘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설계대로라면 지상 하수관로 물 용량이 70% 이상 차야 수문이 열리지만, 이날 개방 기준은 50~60%였다.
폭우 등 비상 상황에서 터널 안 작업자들의 신속한 대피를 돕는 안전 시스템이 미비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6월 초 이 시설을 점검한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비상연락망이며 터널 안은 전파가 잘 터지지 않는 만큼 기본적으로 사이렌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숨진 구씨의 유족은 황망한 표정이었다. 유족에 따르면 구씨는 건강상 문제로 잠시 작업을 쉬다가 공사 현장에 복귀한 지 두 달 만에 변을 당했다.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은 2013년 12월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뒤 2017년 7월 임시 가동을 시작했다. 총길이 4.7㎞에 폭 10m인 해당 빗물저류시설의 시범가동은 올 연말 완료될 계획이었다. 서울시가 지역 내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치한 배수 터널이다. 사고 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으로서 사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사과와 위로 말씀드린다”며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 실종자를 이른 시간 안에 구조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조민아 안규영 황윤태 오주환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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