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1일 오전 0시를 기해 레이와(令和) 시대를 열었다. 나루히토(59) 일왕은 오전 10시30분 일본 도쿄의 거처인 고쿄(皇居)에서 즉위식을 갖고 하루 전 물러난 부친 아키히토(86) 선왕으로부터 왕권을 세습했다.
입헌군주국인 일본에서 왕은 국정의 권한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의 대표자’ 격으로 상징성이 남다르다. 일왕의 재위기간에 따라 연호도 결정된다. 연호는 공공기관과 주식시장 등 주요 행정·산업 분야에서 그레고리력의 연도와 병기된다. 일왕의 존재가 일본인의 삶과 일상에 깊숙하게 관여돼 있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후계구도는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다. 군주국인 영국·스페인·태국·사우디아라비아처럼 일본에서 왕가 안팎의 이야기는 왕실 전문지가 따로 존재할 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한 이날, 일본인 상당수의 시선은 벌써 왕위 계승 서열 1~2위에게 돌아갔다.
일본 최대 포털 사이트인 ‘야후 재팬’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1~4위는 즉위식 안팎의 풍경을 다룬 주요 일간지·방송사의 온라인판 기사였고, 5위는 ‘왕위 계승자의 직함은 어떻게 바뀌나’를 제목으로 후계구도를 분석한 허핑턴포스트 일본어판 뉴스였다.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는 한때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왕위 계승의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다만 왕족 남성에게만 왕위를 계승하는 전근대적 왕실전범(일본식 표현 황실전범)은 여전한 논쟁거리다.
왕실전범은 제국주의 시절인 1889년 제정된 메이지 유신헌법 하에 만들어졌다. 첫 번째 조항에 ‘황위(왕위)는 조종(할아버지 씨종)의 황통으로서 남계의 남자가 계승한다’고 적혀 있다.
왕실전범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여왕이 있었다. 1740년부터 1813년까지 재위한 고사쿠라마치는 여성이었다. 그 이후 200년 넘게 왕권을 잡은 여성은 나오지 않았다. 일본사에서 여왕은 8명뿐. 이마저 왕족간 근친혼이 인정돼 가능한 일이었다.
나루히토 일왕은 아키히토 선왕의 장남이다. 마사코(56) 왕비와 결혼해 무남독녀로 아이코(18) 공주를 두고 있다. 왕실전범을 그대로 적용하면 아이코 공주는 왕권을 물려받을 수 없다.
문제는 일본 왕가에 남자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현재 살아있는 일본의 왕족 18명 중 남자는 나루히토 일왕, 아키히토 선왕을 포함해 5명이다. 전·현직 일왕을 제외하면 현행 왕실전범상 왕위 계승자는 3명에 불과한 셈이다.
국민 여론도 긍정적이다. 도쿄신문이 지난 1월 여성의 왕위 계승에 대한 인식을 여론조사한 결과에서 응답자의 84.4%는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해 왕실전범이 개정되면 아이코 공주가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올라설 수도 있다.
실제 여왕 논의가 급물살을 탔던 때도 있었다. 이키히토 선왕의 재위 시절인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왕위 계승에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왕실전범 개정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5년 뒤 아키히토 선왕의 차남이자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인 후미히토(54) 왕세제가 아들 히사히토(13) 왕자를 얻으면서 논의는 잦아들었다. 후미히토 왕세제는 왕위 계승 서열 1위, 히사히토 왕자는 2위다.
다만 후미히토 왕세제는 나루히토 국왕과 나이에서 다섯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짧게 재위할 가능성이 높다. 후미히토 왕세제는 2017년 측근들에게 “형이 80세쯤 되면 나는 70대 중반이어서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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